2018년 4월 10일 화요일

보수에게 묻는다. 이 승만의 농기 개혁도 사회주의인가 ?( 프레시안 : 남 기업 칼럼).


보수에 묻는다. 이승만의 농지개혁도 사회주의인가?
 
[기고] 토지 불로소득으로 인한 소득 불평등이 문제다.
 
보수에 묻는다. 이승만의 농지개혁도 사회주의인가?
이승만의 가장 큰 업적은 농지개혁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일까? 필자는 1950년 3월에서 5월 사이에 단행한 '농지개혁'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이승만을 가리켜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대통령이라고 한다. 그런데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후, 특히 6.25 한국전쟁 당시 통치자로서 그가 보였던 무책임한 행태, 그리고 1950년대에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의 명백한 불법과 부정을 대면하면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게 아니라 '파괴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농지개혁은 다르다. 

물론 농지개혁을 등 떠밀려서 한 측면도 있다. 북쪽에서 시작한 화끈한 토지개혁의 바람이 남쪽으로 불어와 피하기 어렵기도 했고, 미국의 압박도 있었으며, 지주정당인 한민당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정치적 목적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 농지개혁은 이승만이 아니라 초대 농림부장관이었던 조봉암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농지개혁과 같은 급진적 개혁 과제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추앙하는 '보수'는 이승만이 저지른 온갖 불법과 부정을 마치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지키기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라거나 갖은 악행 뒤에는 범인(凡人)이 헤아리기 어려운 원려지심(遠慮之心)이 있었던 것처럼 미화할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농지개혁을 치적으로 강조해야 하고, 그랬을 때 한국 사회의 의미 있는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31% 농지의 소유자가 변동된 역사적인 사건

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농지개혁 결과 총 69만4894정보(1정보=3000평)의 농지가 분배되었는데 1947년 당시 경지면적이 219만2546정보였으니까 전체 농지의 31%가 소유자가 변동된 셈이다('세수포럼' 2014년 5월 김정진의 발표문 '잊혀진 역사, 농지개혁' 재인용). 매년 50~70%의 소작료로 고통받던 농민들은 매년 평년작의 30%를 5년간 현물로 납부하면 소유권을 획득할 수 있었던 반면, 지주들에게는 현물이 아니라 지가증권으로 보상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농지개혁은 농민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이었지만 지주들에겐 손해였다. 

농지개혁은 대한민국을 자작농의 나라로 만들었다. 1945년 말 총 경지면적의 35%에 불과했던 자작지는 농지개혁 직후인 1951년 말에는 96%로 급등했다. 1949년에 성공적인 농지개혁을 완성한 일본도 개혁 후의 자작지율이 90%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농지개혁의 내용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역사비평> 91호 전강수의 '평등지권과 농지개혁 그리고 조봉암' 307쪽) 이로써 산업화 시작 전에, 산업화에 가장 큰 걸림돌인 전통적 지주제는 해체된 것이다. 

성공한 농지개혁은 교육열과 경제 발전의 기초

이승만의 성공적인 농지개혁이 가져온 사회경제적 효과는 실로 엄청나다. 먼저 농지개혁으로 농민들은 생계를 유지해가며 자식들을 교육시킬 수 있었는데, 이러한 교육에 대한 열정은 유능한 인적 자본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농지개혁이 가져온 공평한 토지 분배는 국내의 안정적인 수요 기반 구축과 제품의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평등한 토지 분배는 소유 토지가 사업의 밑천으로 쓰인다는 것을 감안하면, 신흥 자본가 출현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요컨대 이승만의 성공적인 농지개혁이 성공적인 산업화의 기초였던 셈이다. 

그뿐 아니라 성공적인 농지개혁은 한국전쟁에서 남한의 공산화를 막을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인구의 절대다수였던 농민 입장에서는 전쟁 전에 이미 자기 땅이 생겼기 때문에 북한의 '급진적' 토지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유인이 크지 않았다. 남한 정권에서 살더라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면, 굳이 북한 정권을 지지할 필요는 적었다. 

성공적인 농지개혁이 있었기에 높은 교육열과 성공적인 산업화가 가능했다는 것은 이미 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한민국의 보수를 자칭하는 학자들은 농지개혁을 강조하는 것에 '소극적'이다. 농지개혁의 의미를 오늘날에도 되살리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인지 알 순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성공적인 농지개혁을 빼면 이승만에게서 내세울 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토지 소유 실태와 막대한 토지 불로소득

성공적인 농지개혁을 통해 달성한 공평한 토지 분배는 다시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처럼 극도로 불평등한 구조로 바뀌었다. 2012년 현재 1%의 인구가 개인 토지의 55.2%를 소유하고 있고 10%의 인구는 97.3%를 소유(면적 기준)하고 있는 반면, 40.1%의 세대는 토지를 한 평도 가지고 있지 않다. 법인의 토지 소유 집중은 더 심한데, 2014년 현재 토지 소유자 중 상위 1%가 전체 법인 소유지의 무려 75.2%를 소유(가액 기준)하고 있다. 한마디 말해서 한국 사회의 토지 소유 편중은 극심한 상태다.

물론 토지를 모두가 고르게 소유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어느 토지를 얼마나 소유할지는 각 경제 주체가 자유롭게 정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문제의 핵심은 토지에서 엄청난 불로소득이 발생한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이 불로소득의 거의 대부분을 토지 과다 보유 개인과 법인이 차지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토지 소유의 불평등이 아니라, 토지 불로소득으로 인한 소득 불평등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로소득은 대체 얼마나 발생한 걸까? 위의 표에 의하면, 2007~2015년 우리나라의 부동산 불로소득은 2년을 제외하고 매년 300조 원 이상 발생(GDP의 21% 이상)했고, 2015년에는 무려 346.2조 원의 소득이 발생했다. 이 소득은 생산과 기여에 대한 결과가 아니므로 결국 다른 사람의 노력 소득을 이전시킨 것인데, 관건은 과연 누구의 노력 소득이 침범을 당했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하위계층이다. 다시 말해서 매해 300조 원이 넘는 하위계층의 노력 소득이 토지를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는 상위계층에게로 '합법적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것인데, 우리는 여기서 소득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 바로 토지 불로소득임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사회적 불평등과 문재인의 토지공개념

이번에 청와대는 헌법에 토지공개념 명문화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사회적 불평등"을 언급했는데, 적확한 지적이다. 농지개혁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 사회는 토지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했다. 한국의 토지제도는 분배를 악화시키는 주범이고, 국민 경제를 짓누르는 무거운 맷돌이며, 대다수 국민들의 주거를 불안하게 만들고, 나아가 주기적으로 경제 전체를 불황의 늪에 빠뜨리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재의 토지제도에 토지私개념이 강하게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것처럼 토지公개념을 헌법에 명기하고 그 정신에 맞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토지공개념의 핵심 정책 수단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것은 처분과 이용에 대한 제한이 아니라 토지 불로소득 환수에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분배를 개선할 수 있고 생산의 용수철을 튀어 오르게 할 수 있으며 주거 불안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활기찬 시장경제를 열어젖힐 수 있게 된다.

한국의 보수는 이승만의 농지개혁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 보수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보수가 중요한 역할을 하려면 대한민국 최초로 토지공개념을 적용한 농지개혁이 높은 교육열과 경제 발전의 토대였다는 것을 반추하여 오늘날에 적용해야 한다. 

농지개혁은 거의 혁명과도 같은 조치였다. 농지개혁 당시의 지주소작관계를 해체하지 못했다면, 농지개혁에 실패한 필리핀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주의 발전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이승만 정부가 소작농들의 피맺힌 절규와 요구를 받아 안아 농지개혁으로 응답했듯이, 오늘날의 보수도 주거 불안정에 떨고 있는 집 없는 서민들과, 높은 임대료로 허덕이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과, 높은 주거비 때문에 결혼도 포기하는 청년들의 고통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문화하여 토지 투기 없는 건강한 자유시장경제를 만들자고 제안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구절벽을 넘어 국가소멸을 걱정하는 암담한 지경까지 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토지 공개념, 그 악의적 해석에 부쳐 ( 프레시안 : 이 태경 칼럼 ).


토지공개념, 그 악의적 해석에 부쳐.
 
[기고] 토지공개념이 헌법정신이다
토지공개념, 그 악의적 해석에 부쳐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 가운데 가장 첨예한 이슈가 '토지공개념'이다. 일각에선 '토지공개념' 명문화를 사유재산권과 사유재산제의 근간을 흔든다고 매도하는 모양이다. 무지의 소산이거나 악의적 왜곡이다. 토지공개념이야말로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정확히 담보한다. 왜 그런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목표 중 하나가 사회국가다. 사회국가란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인간적 존엄을 보장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하는 국가다. 선진국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사회국가의 달성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사회국가는 현대 국가들이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다. 

사회국가 원리로부터 나오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다. 대한민국 헌법은 사유재산제와 자유경쟁을 기본으로 하되, 사회정의, 사회복지, 경제민주화 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에게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을 가능케 하고 있다. 만약 국가가 경제부문에 적절한 규제와 조정을 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필연적으로 약육강식의 정글이 될 것이다.

이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원리로부터 파생되는 것이 사유재산제와 재산권의 보호,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의무 충족 등이다. 쉽게 말해 법률에 의해 내용과 한계가 정해진 재산권의 사유는 보장되지만, 그런 재산권의 행사도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데 토지재산권은 그 속성이나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다른 재산권에 비해 훨씬 높은 공공복리 적합의무가 부여된다는 것이고, 이를 토지공개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토지공개념은 기존 87년 헌법에도 스며 있으며 헌법재판소의 해석을 통해 확고히 지지돼 왔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문화 하자는 요구는 줄기차게 있어왔다. 그렇게 해야 국회의 토지공개념 관련 입법재량이 넓어지고, 헌법재판소가 토지재산권 관련 위헌법률심판 사건이나 헌법소원 사건을 판단할 때 과거보다 더 전향적으로 심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토지공개념 개헌안은 토지공개념 명문화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를 정부가 전격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설사 이번 개헌안이 통과돼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명시된다고 해도 토지재산권 관련 사법심사는 여전히 과잉금지원칙과 본질내용침해금지 등의 적용을 받는다. 사유재산권의 근간을 흔들 위험은 제로라는 뜻이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토지공개념 개헌안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토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헌법정신에 정확히 부합한다 할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자원배분의 왜곡을 낳는 최대원인인 토지문제의 해결 없이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국가의 건설은 난망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개헌 발효 시점이다(프레시안 : 관 노현 칼럼).


관건은 개헌 발효 시점이다.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8>]
관건은 개헌 발효 시점이다






국회 주도 개헌이 무산 위기에 처했다. 정부여당은 대통령의 권한 중 일부를 축소지향적으로 조정한 4년 연임 대통령제 개헌안을 내놓았다. 자유한국당은 그 정도로는 제왕적대통령제를 극복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국민 직선 외치대통령과 국회 선출 내치총리를 행정부의 투톱으로 삼는 이원정부제를 대안으로 내놨다. 바른미래당과 정의평화모임도 자유한국당의 권력구조 개헌안에 동조한다. 

정부여당의 대통령제와 야당의 이원정부제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4년 연임 대통령제를 지지한다. 20대 국회의 민주당과 자한당은 각자 단독으로 개헌저지의석을 보유한다. 양당이 합의하지 않으면 어떤 개헌도 불가능한 정치구도다. 현재 양당은 정부형태뿐 아니라 개헌시기와 개헌내용에서도 사사건건 충돌한다. 

나는 여야가 권력구조에서 평행선을 달리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6월 개헌은 물론이고 20대 국회의 개헌가능성 자체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제냐 이원정부제냐는 2년 후 21대 총선의 주요 쟁점이 돼 거기서 판가름이 날 것 같다. 다만 한두 가지 탈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여야는 권력구조를 제외하고 합의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만 이번 6월에 개헌하기로 합의할 수 있다. 

그런데 자한당은 6월 동시개헌은 절대로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지방선거 때 개헌국민투표를 실시하면 투표율이 높아져서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게 공식 이유다. 명색이 제1야당이 국민투표비용 절약과 국민투표율 제고라는 이중공익 실현기회를 자신의 득표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내차겠다는 것.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널리 알려서 다시는 이런 얘기 입도 뻥긋 못하게 해야 한다. 

두 번째 탈출구는 여야가 권력구조 개헌 발효 시점을 20대 국회의 종료이후로 늦추는 데 합의하는 안이다. 여야의 극한대치는 권력구조 개헌안이 문재인 대통령과 20대 국회에 곧바로 적용되는 것을 전제한다. 이렇게 되면 정부여당과 야당 간에 싸움이 끝나지 않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당장 눈앞의 이익이 어른거려서 이성적 대화와 토론에 따른 양보와 타협이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으면 훨씬 더 합리적 접근이 가능하다.

국회 주도 여야합의개헌이 개헌시기와 정부형태를 둘러싼 여야의 입장 차이를 해소하지 못한 채 무산될 위기에 처한 최근의 상황전개를 지켜보면서 나는 좀 더 근본적으로 다음의 두 질문에 답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첫째, 전면 개헌은 한 번에 해치우는 게 바람직한가, 아니면 순차적 단계적으로 해나가는 게 바람직한가? 만약 후자라면 이번에는 어떤 헌법사항을 최우선적으로 개헌하는 게 바람직한가? 당장 합의가 불가능해 보이는 권력구조부분은 시간을 더 갖고 더 논의해도 되지 않을까? 

둘째, 권력구조 개헌의 발효 시점을 언제로 잡는 것이 바람직할까? 대통령 개헌안에 드러난 청와대 생각은 공포즉시 발효인데 빠르면 다음 국회, 늦으면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이렇게만 해도 권력구조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대폭 정리되지 않을까? 

순차적·단계적 개헌이 바람직하다

첫째, 전면 개헌은 반드시 한 번에 단행해야 하는 게 아니다. 합의 가능한 만큼만 순차적으로 추진해도 된다. 이게 실용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생각을 이미 여러 번 밝힌 바 있고 머지않아 국회 연설을 통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야당들에 호소할 게 틀림없다. 

전면 개헌을 할 때에는 오히려 순차 개헌이나 단계 개헌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무엇보다 몇 개 쟁점사항 때문에 이견이 전혀 없는 부분까지 개헌이 늦춰질 이유는 없다. 여러 편으로 묶어서 따로 진행할수록 국회의결과정과 국민투표과정도 좀 더 의미를 갖게 된다. 실은 국회의결과 국민투표는 조문별로 찬반표시가 가능한 수준까지 나아가야 바람직하다. 그래야 어떤 헌법조항도 도매금으로 다른 좋은 것에 묻어서 넘어가지 못한다. 그렇지만 현행 개헌절차에 따르면 대통령이나 국회가 (전면)개헌안을 발의하면 국회도, 국민도 아무런 수정가감을 하지 못하고 패키지로 찬반투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다른 게 다 마음에 드는데 1개 조문이 틀렸다는 확신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론조사 결과도 반대여론이 더 우세하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일부 헌법조항이 몹시 엉성한데도 국회타협과정에서 넘어갔고 일부조항은 그 과정에서 앙상해졌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한두 조문만 반대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체를 반대하는 게 타당할까?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조문별로 하나하나 찬반표시가 가능하게 국민투표를 실시하면 반대표가 더 나왔을 조문이 묻어서 헌법이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한두 조문이 확실하게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마음에 드는 나머지를 다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일부 미흡하고 나쁜 조항이 있어도 전체적으로 괜찮으면 찬성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원칙에 따르면 개헌안은 웬만하면 국민투표를 통과하게 된다. 물론 각자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선호에 어긋나는 조문이 하나둘씩 들어오는 게 흠이다. 헌법에는 누가 봐도 이게 아닌데 싶은 건 들어오면 안 된다. 

원칙적으로는 하나라도 틀린 게 있으면 반대해야 나쁜 헌법이 어물쩍 묻어 들어오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한 개 조문만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질 경우 국회의원의 2/3이상의 찬성을 받은 개헌안도 국민투표를 통과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야만 여야의 타협과정에서 무원칙한 야합과 바터가 일어나는 일이 줄어든다. 개헌국민투표의 패키지 찬반표시가 강제하는 나쁜 조항의 무임승차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현행개헌절차를 개헌해서 국회의결과 국민투표에서 조문별로 따로따로 찬반표결을 실시하면 된다. 

어떤 개헌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나? 촛불개헌운동을 열심히 해온 시민단체 중 일부는 이미 국민개헌발의권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운동에 돌입했다. 국민개헌발의권을 확보하면 힘이 들더라도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확보해서 아무 때고 원 포인트 국민 주도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유한국당이 헌법조항 하나하나를 문제 삼고 비토하는 마당에 촛불개헌의 내용 하나하나에 집착하기보다 그때그때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는 좋은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국민개헌발의권은 이미 제3공화국 시절의 헌법도 인정했던 주권자의 원천권리다. 국민들이 압도적 지지를 보내기 때문에 자한당도 덮어놓고 반대하기 쉽지 않다. 

권력구조 개헌안은 21대국회부터 적용되어야한다 

둘째, 권력구조 개헌의 발효 시점은 2020년4월 총선으로 구성될 21대국회의 임기개시일이든가 2022년3월 대선으로 선출될 대통령의 임기개시일이라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의 국회조건과 이해관계를 떠나 역지사지의 바탕위에서 공정한 개헌논의와 합의가 가능하다. 

정의론으로 유명한 롤스에 따르면 국가를 만드는 사회계약을 할 때 구성원들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을 써야 한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질수록 좋지만 단 하나, 자기가 구체적으로 누군지, 어떤 이해관계를 가졌는지는 몰라야 한다. 무지의 베일을 쓴 사람들만이 모두에게 공평한 정의의 원칙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사회계약의 당사자들이 각자의 사회경제적 지위나 이해관계를 알고 있을 경우 그 영향을 받아 정의의 원칙을 합의하기도 어렵고 어렵사리 합의가 이뤄져도 기득권의 논리를 닮아있기 쉽다. 나의 정체성(성별, 인종, 연령, 정치적 의견, 재산상태, 종교 등)에 관한 개인정보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무지의 베일은 공평무사한 논의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롤스가 만들어낸 첫 번째 전제조건이었다. 

개헌문제를 논의하면서 내가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굳이 거론한 이유는 지금 여야 간에 진행되는 개헌논의는 무지의 베일을 쓴 상태, 즉, 여야가 공평무사한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객관적 상태와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현재 야3당은 모두 여소야대 국회의 야당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안다. 여당도 여소야대 국회의 여당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지금의 여소야대상황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2020년4월까지 앞으로 2년 더 진행된다는 사실도 여야 모두가 잘 안다. 

지금의 여소야대 국회를 전제하고 총리의 국회 선출을 요구하는 자한당 개헌안은 문재인 대통령더러 연정합의를 통해 여권다수연합 연립내각을 만들어내든가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야당총리 및 야당내각과 불편한 동거정부를 운영하라는 뜻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현재의 여소야대 국회는 2016년4월의 민심을 반영할 뿐 이미 1년 가까이 확인된 여대야소 민심과 완전히 거꾸로다. 

이걸 뻔히 아는 문 대통령이 야당 안을 일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앞으로 2년 동안 여소야대 국회에 시달릴 줄 뻔히 아는 문 대통령이 국회의 대통령인사통제권한을 강화시켜줄 마음이 나겠는가? 대통령 개헌안이 장관(급)조차 국회의 인사동의대상으로 잡아주지 않은 이유일 게다. 이런 상황에선 여야가 대통령과 국회 공히 바람직한 권력재편방안에 합의할 수 없다. 현재 여야정치권이 함께 빠져있는 최대의 개헌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해법이 없진 않다. 여야가 평행선 없는 설전을 계속하는 이유는 여야정치권이 여소야대 국회를 전제로 철저하게 제로섬게임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제로섬게임은 국민투표를 통과한 개헌안이 공포 즉시 발효할 수밖에 없다는 착각 위에 성립한다. 그러나 개헌안의 발효 시점은 여야합의로 사항별로 얼마든지 달리 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여야는 권력구조 개헌안의 발효 시점을 21대국회의 임기개시일로 잡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여야가 갑자기 무지의 베일을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은 여소야대 국회지만 2020년 4월 총선에 의한 국회구성은 누구도 지금 예측하는 게 쉽지 않다. 집권4년차에 접어드는 대통령과 여당이 좋은 평가를 받기란 쉽지 않다. 지금은 죽을 쓰지만 야당이 정신 차리고 혁신하면 이미 받아놓은 선거시점이 야당에 더없이 유리하다. 그런가 하면 문 대통령과 여당도 정부여당에 십중팔구 불리하다는 중간선거 신화 깨기에 도전해볼 만하다. 여전히 대통령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인데다 앞으로도 남북관계 해빙모드가 지지율 관리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니 여야 모두 미지와 형성의 영역에 속하는 2년 후 개헌 발효를 전제로 다시 권력구조 대안을 협상해보시라. 

이번 개헌안의 핵심은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재분배다. 그것도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줄이고 국회의 견제권한을 늘리는 게 핵심이다. 대통령과 의회 사이에 권력파이를 다시 나누는 완전한 제로섬게임인데 그 결과에 따라 대통령과 야당에게는 새로운 위험요인과 기회요인이 열린다. 우리현실에선 어쩔 수 없이 자한당 주도의 여소야대 국회가 권력재분배 제로섬게임의 주도권을 쥔다. 야당은 대선패배를 이 참에 만회하려는 듯 내치전담총리를 내놓으라며 떼를 쓴다. 

본래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파이를 누가 새로 나눠야하는가? 당연히 당사자들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것도 촛불국민이다. 제왕적대통령과 측근의 국정농단에 맞서서 이게 나라냐며 촛불을 들고 결국 대통령탄핵과 조기정권교체로 세상의 큰 변화를 만들어낸 주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에선 촛불시민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한당의 목소리가 크게 메아리친다. 제1야당이라 그렇다. 개헌저지선을 확보한 자한당의 몽니로 지금의 국회 주도 개헌과정에서는 촛불민심의 목소리는 최소화되고 촛불반대목소리가 최대화된다. 

돌이켜보면 촛불시민들도 촛불광장에서 개헌구호를 외치진 않았다. 다만 더 이상 대통령이 제왕처럼 군림하지 않는 나라, 더 이상 재벌이 정경유착형 부패에 연루되지 않는 나라, 더 이상 국정원과 검찰이 정권안보에 동원되지 않는 나라를 열망했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진실이 일상적으로 확인가능하고, 사회경제권의 뒷받침을 받아 누구나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나라다운 나라를 꿈꿨다. 이와 같은 꿈과 열망의 실현에 꼭 필요한 개헌이 촛불개헌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시민혁명의 적통임을 자부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과정에 촛불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다시 이끌어냈어야 했다. 그래야만 자유한국당을 효과적으로 압박하고 견인할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이 나서기 어려우면 여당인 민주당이 그렇게 해야 했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이 길을 걷지 않아 생긴 공백을 어처구니없게도 민심과 동떨어진 여소야대 국회, 특히 지지율대비 현저한 과잉권력을 누리는 자한당이 채웠다.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재분배문제도 직접당사자인 국회의 개헌특위가 주도하게 됐다. 오늘의 촛불헌법 불임정국을 낳은 비극의 씨앗이 이때 잉태됐다. 

이번 개헌의 목적이 촛불시민혁명의 제도적 완성에 있고 그 핵심과제가 제왕적대통령제 극복이기 때문에 권력구조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현직대통령과 20대 국회는 권력구조 개헌안 마련을 주도하면 안 된다. 양자 모두 국민대표기관이지만 국민의 관점보다는 대의권력기관으로서 권력의 관점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의석수에 비해 지지율이 반 토막 난 자한당이 권력구조 개헌안 마련을 주도하는 건 불공정의 극치다. 촛불시민과 문재인정권이 만들어낸 현재의 민심분포에서 자한당 지지율은 20%안팎이다. 국민의 20%를 대변하는 자한당은 촛불개헌을 주도할 자격이 없다. 지금처럼 자유한국당에 개헌정국의 키를 쥐어주면 안 된다. 

부질없는 사후가정이자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청와대는 진작부터 바른당, 국민당, 정의당까지 묶어서 개헌대연정을 도모하며 자유한국당을 탄핵에 이어 두 번째로 고립시켰어야 했다. 이랬더라면 지금쯤 자유한국당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보수의 주류교체가 이뤄졌을 수도 있다. 

게다가 국회는 1년 이상 충분한 시간을 가졌을지 몰라도 국민의 관점에서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바 없다. 청와대도 국민개헌자문특위가 불과 한 달 만에 뚝딱거려 만들어낸 개헌안을 국민 주도 개헌안으로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1년 이상 지속됐으나 조문화작업도 못한 국회개헌특위 시절 도대체 여당인 민주당은 뭐했는지 묻고 싶다. 국고보조금을 몇 백억씩 받는 여당으로서 주요 쟁점별 개헌토론회를 최소한 시군구별로 대여섯 번 이상 조직해서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올렸어야 했다. 전국적 차원에서 이런 정도로 숙의민주주의형 개헌공론화장을 조직하지 않고 고작 국회밀실에서 개헌논의를 독점하며 자유한국당과 '밀당'만 하다 끝낸 것 아닌가. 국회와 원내정당 어디도 국민 주도 개헌과정을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만들어낼 의지가 없었다. 그저 시민자문위 구성이나 공청회 실시 등 구태의연한 시민참여 코스프레를 연출했을 뿐이다. 

요약하자면, 첫째, 이번 6월에는 국민의 개헌발의권 기타 여야합의가 가능한 기본권과 자치분권을 중심으로 개헌하고 권력구조 개헌에 대해서는 추후일정을 합의하는 수준이면 된다. 

둘째, 권력구조에 대해서는 여야가 개헌 발효 시점을 2020년 4월 총선이후나 2022년3월 대선 이후로 늦추는 합의부터 해야 한다. 이래야만 여야의 직접이해당사자성을 최대한 없애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대한 무지의 베일을 쓰고 토론과 협상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순차 개헌 합의로 연내까지 개헌논의를 열어놓되 여야합의로 17개 시도별로 각300인 규모의 시민의회를 두세 달쯤 운영하고 그 결론을 국회가 최대한 따르는 게 필요하다. 

넷째, 만약 여야정치권이 극적으로 전면 개헌안에 합의할 경우 여야정치권은 국민투표 부결 시 의원직 총사퇴 및 조기총선 실시라는 배수진을 치고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국회의 전면 개헌안이 부결되면 20대 국회는 존립근거를 상실한다. 

탄핵 반대를 외쳤던 이들이 자한당 지방선거 후보로 속속 확정·발표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자한당과 합리적 대화와 타협이 가능할지 몹시 우려되기는 한다. 그럼에도 대선 때 6.13 개헌 약속을 했던 자한당이라 개헌저지 몽니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이번 6.13 선거에 부메랑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빠른 시일 안에 순차 개헌과 개헌 발효 시점 조정에 합의해 30년 만에 찾아 온 역사적 기회를 살려내길 기대한다.

PK와 호남 10년의 내전을 끝내자(프레시안 : 이 충렬 작가).


PK와 호남 10년의 내전을 끝내자
 
[이충렬의 정권+교체] DJ와 盧의 실패한 꿈, 문재인이 이룰까?
 
 
 
2018.04.10 10:02:56
PK와 호남 10년의 내전을 끝내자
 
 
1. PK는 대한민국의 캐스팅보터

지방선거가 서서히 달아오르면서 언론과 정치전문가들의 촉각이 부산·경남·울산을 의미하는 PK(부산경남)지역에 쏠리고 있다. 이 지역의 성적이 여야의 승패를 가름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여당인 민주당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다면, 지방선거의 승리로 머물지않고, 차기 총선을 거치면서 한국정치의 판이 바뀌게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PK결투에 당운을 거는 연유다.  Ⅰ

부산에는 오거돈(민주당) VS 서병수(한국당), 경남에는 김경수(민주당) VS 김태호(한국당), 울산에는 송철호(민주당) VS 김기현(한국당)으로 대진표가 짜졌다. 

돌이켜보면 한국정치에서 대권의 향방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지역은 PK였다. (유일한 예외는 DJP연합으로 집권한 김대중정부였지만, 이 역시 TK와 PK가 분열한 어부지리의 결과였다). 충청지역을 캐스팅보터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PK야말로 진정한 캐스팅보터였다. 충청은 대세가 결정되면 거기에 힘을 보태주는 역할을 해왔다. PK를 둘러싼 지정학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사실상 결정해왔다. 

 2. 합종연횡의 지정학

합종연횡이라는 용어는 2200여년 전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 천하통일의 방책을 둘러싸고 서로 경쟁한 두 개의 전략을 말한다. 당시 최강 대국이었던 진나라를 중심으로 연대할 것인지 (가로축 개념의 연횡책), 아니면 다른 6국이 진나라에 대항할 것인지 (세로축 개념의 합종책)라는 두 개의 노선이 대립하였다. 결국 진나라가 6국의 합종을 깨고 연횡책을 성공시킴으로서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중국시대를 열게된다.

합종연횡이 케케묵은 2000년 전의 고사성어에 불과하다고 느끼는가? 필자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관건적 개념이 합종연횡이라고 보고 있다. PK를 둘러싼 호남과 TK의 합종연횡이 현대 정치를 해석할 수 있는 기본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국제 정치와 외교에서 지정학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제1의 요소로 연구 대상이 된다. 그런데 국내 정치에서는 지정학을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주류정치학과 진보정치학 공히 지정학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지식인 사회는 국내 정치를 움직이는 지정학에 무지한 반면에 현실 정치에서 지정학적 요소는 정치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국내 정치에서 최초로 지정학을 이론화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지역등권론이었다.)

3. 합종(세로축)의 시대: TK와 PK의 연합

합종의 시대는 두 개로 나눠볼 수 있다. 박정희·전두환 시대(1961년 - 1987년)와 3당합당시대(1990년-2017년)가 그것이다.

지정학을 최초로 집권 전략에 도입한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결정적 계기는 호남출신의 김대중 후보와 대결한 71년 대통령 선거였다. 후세의 사가들은 엄청난 부정선거로 얼룩진 이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졌다면 김대중의 승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있다. 김대중은 낙선했지만 ‘정신적 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너무도 탁월한 적수를 맞이하여 패배가 두려웠던 박정희는 히든카드로 지정학 즉 지역주의 카드를 꺼낸다. 호남을 악마화하고 영남을 단결시키는 지역이간의 정책이었다. 

집권 내내 박정희는 호남을 희생양으로 삼고 영남을 집중적으로 키우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영남 출신 군벌, 하나회를 통해 전두환과 노태우 등 자신을 보위할 근위대를 키웠다. 관료사회와 재벌 등 모든 영역에서 경상도 중심으로 한국사회를 재편했다. 5.16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이북 출신과 충청도 출신은 외곽으로 밀려나고, TK를 중심에 두고 PK를 외곽에 포진시킨, 오늘날 영남패권주의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졌다. 

영남군벌이 주도한 1980년 광주학살사건으로 호남과 TK는 한국정치의 대척점에 서게 되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것같았던 TK패권주의는  26년만에 1987년의 6월항쟁으로 무너질 위험에 처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행운의 여신은 그들 편이었다. 민주화진영이 호남의 김대중진영과 PK지역의 김영삼진영으로 분열하고 그들의 대립이 더 이상 화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TK세력의 노태우 대통령은 둘 중의 하나를 포섭하려 하였다. 

처음에는 김대중을 포섭하려 했으나, 대의를 중시한 김대중은 이를 거절하였고, 민주화운동 내부의 주도권 경쟁에서 도저히 김대중을 이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김영삼은 TK 군부독재세력과 손잡을 결심을 하게된다. 그 결과가 1990년 1월 20일 3당합당이었다. 이로써 TK와 PK를 연합시킨 합종책이 민주세력의 일부를 포섭한 확장형으로 완성되었다. 호남을 고립시킨 이 구도가 출현함으로서, 이른바 영남패권주의가 한국정치를 지배하는 주류가 되었다.     

이로부터 27년 동안 그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영남패권주의를 유지하였다.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TK출신 대통령을 연속 배출하면서 TK의 전성시대를 다시 구가하였다. 그러다가 2017년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감옥에 감으로써 TK가 주도하는 영남패권주의는 붕괴 위기에 직면한다. 

4. 연횡(가로축)의 시대: 호남과 PK의 연합

연횡의 시대도 두 개로 나눠볼 수 있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시대(1970년-1987년)와 김대중과 노무현의 시대(1997년-2004년)가 그것이다. 호남과 PK의 연합은 오월동주의 운명을 겪었다.  

연횡의 기원은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였던 김대중과 김영삼의 연합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70년 당시 야당의 ‘40대 기수론’으로 김대중과 김영삼이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이후 6월항쟁이 일어난 1987년까지 두 지도자는 협력과 경쟁을 반복하면서 군부독재 타도를 목표로 하는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두 지도자가 목숨을 건 처절한 민주화투쟁을 진전시키면서 민주화운동은 두 지도자의 계파적 연합을 넘어 점차 강고한 지역연합의 골격을 갖추게 된다. 특히 두 지도자와 뗄 수 없는 연관을 지닌 부마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두 지도자의 출신지역인 호남과 PK는 민주화운동의 강력한 지지기반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두사람의 정치연합을 대표하는 조직이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였다.  

TK가 중심이된 합종(영남패권주의)이 기본적으로 군부독재시절에 형성된 기득권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 있었다면, 김대중과 김영삼의 지역연합은 ‘민주화’라는 가치연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지역이 중심축이 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된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연횡의 시대는 정점에 올라서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점에 올라서자마자 김대중과 김영삼은 대통령 후보를 둘러싸고 영원한 분열의 길로 들어선다. 이때 TK세력은 양김을 이간하기 위한 공작정치에 총력을 기울였고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1990년 3당합당으로 두번째 합종의 시대가 열리자 호남에 고립된 김대중은 이를 타개하고자 지역등권론이라는 이론을 내세운다. 그리고 TK와 PK가 주도권 싸움을 하는 와중에 주류에서 떨려나온 김종필의 충청세력을 포섭하여(DJP연합)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다.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과 동교동은 PK와의 연합을 재건할 의도가 없었다. PK를 다시 끌어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자신의 후계자로 처음에는 TK출신의 김중권(노태우의 정무수석 출신)을 그리고 그가 무너진 다음에는 충청 출신의 이인제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호했다. 그렇게 호남의 고립을 타개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물꼬를 정반대로 돌린 이가 노무현 대통령이다. 김영삼의 3당합당에 합류하지 않고, PK지역에서 정통민주화운동의 깃발을 사수했던 노무현은 처음에는 3김청산 운동을 벌였으나 힘의 한계를 깨닫고 민주화의 정통성을 가진 김대중 진영에 합류하였다.

그는 호남과 PK를 연합시키는 연횡구도의 복원을 염두에 두고 ‘호남당의 영남후보론’이라는 깃발을 내걸었다. PK의 민주세력을 상징하는 자신을 통해서 호남과 PK가 손잡는 ‘연횡의 시대’를 다시 꽃피우자는 주장이었다. 

그의 주장은 2002년 노풍(盧風)이라는 정치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호남을 비롯하여 정통 민주세력은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노무현정부가 탄생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그의 고난에 찬 불굴의 투쟁으로, 김중권정부나 이인제정부나 이회창정부가 나오지 않고,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세력의 주류가 이 땅에 확고히 뿌리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연횡의 시대도 잠시였다. 2004년 호남의 세대교체를  갈망했던 정동영·천정배·신기남 등 호남의 신진세력과 개혁정치를 표방했던 유시민은 노무현 대통령을 설득하여, 호남에 기반한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였다. 

이들의 애초 기대와는 달리 열린우리당으로의 분열은 호남과 PK라는 연횡의 구도를 산산조각내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호남은 호남대로, PK 민주화세력은 그들대로 TK패권주의에 각개격파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큰 그림으로 볼 때 ‘TK가 짜놓은 영남패권주의’를 위협하는  PK의 민주지도자를 TK 세력이 제거하는 정치적 탄압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은 호남세력과 PK민주화세력의 골육상쟁으로 점철되었다. 이 슬픈 내전을 끝낸 것은 촛불혁명이었다. 되돌아보면 연횡의 역사는 짧았고 호남과 PK가 내부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인 처절한 투쟁은 길었다.  

5.  국민의당 VS 꼬마민주당

지난 2016년 총선에서 호남세력은 문재인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에서 탈당하여 국민의당을 만들었다. 이때 안철수라는 데릴사위를 앞세웠다. PK세력과의 당내투쟁에서 패배하자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신당을 차린 것이었고, 호남을 석권하는 예상외의 성적으로 호남 1당으로 올라섰다. 

국민의당이 창당될 때 많은 호남인들의 심금을 울린 책이 있다. 서남대 교수 김욱이 쓴 <아주 낯선 상식>이었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를 영남패권주의에 포섭된 세력으로 볼 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영남패권주의의 핵심으로 보고 주적으로 규정하였다. 영남패권주의의 핵심인 TK패권주의에 대해서는 오히려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 

근본적인 오류였다. 김영삼 세력의 상당수가 TK패권주의에 합류해 영남패권주의의 구성요소가 된 점은 맞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친노는 기본적으로 영남패권주의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TK패권주의를 해체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지렛대라는 점을 간과했다. 

호남정치가 몰락하는 가장 큰 원인은 내부에 있었다. 장기간에 걸친 지역 독점을 통해 고인 물이 된 기득권 구조가 점차 썩어간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는데, 김욱 교수는 호남정치의 쇄신은 아예 문제의식조차 없이, 오로지 원인을 밖에 있는 친노패권주의 탓으로 돌리는 우를 범했다. 

김욱 교수는 호남민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낭패감은 잘 반영했지만, 진단과 처방은 틀린 것이었다. 그의 반친노 노선은 결과적으로 호남에도 뉴라이트가 커밍아웃하게 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친노와 호남세력의 갈등은 당내 주도권을 둘러싼 내부투쟁이었는데, 친노와 친문을 영남패권주의로 잘못 등치시키고 주요 공격 목표로 설정한 것이었다. 잘못된 진단과 처방은 촛불혁명으로 그 오류가 밝혀졌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본격화하자 국민의당 내부는 김대중 노선을 추종하는 호남 세력과 보수 세력과의 연합을 지향하는 안철수 세력으로 쪼개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 유사한 장면이 20여년 전에도 있었다. 반DJ노선을 걸었던 꼬마민주당의 최후와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87년 민주진영의 대분열 이후 김대중세력이 민주화운동의 주류가 되었을때 비호남 민주세력은 3김청산과 김대중의 정계은퇴를 요구하였다. 이들이 모인 정당이 이른바 이기택, 이부영, 제정구, 노무현 등이 주도한 꼬마민주당이었다. 이들은 김대중없는 야당을 원했으나 결국 김대중의 힘을 인정하고 그와 연합의 길을 택했다. 

그러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복귀를 하자 다시 반DJ노선을 선택하였다. 그렇지만 96년 총선에서 독자생존에 실패하였고,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진로를 둘러싸고 내부 분열을 하게 된다. 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중심에 두고, 김대중으로의 정권교체를 지지했던 노무현과 원혜영 등은 새천년민주당으로, 김대중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기택과 이부영 등은 TK 본류의 한나라당 행을 택한다. 

새천년민주당에 들어간 노무현은 천신만고 끝에 김대중의 후계자 자리를 쟁취함으로서 김대중·노무현세력이라는 민주세력의 주류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두 당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국민의당은 친노·친문을 TK패권주의와 동일시하는 우를 범했고, 꼬마민주당은 호남의 방어적 지역주의를 TK의 패권적 지역주의와 구별하지 못했다. 

국민의당과 꼬마민주당의 사례는 호남과 PK가 연합하는 연횡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상호간에 깊은 불신과 상처가 패여있다.  

6. 3번째 연횡이 성공하려면

PK가 TK와 손잡으면 영남패권주의가 한국사회를 지배한다.

반면에 PK가 호남과 연합하면 민주주의의 거대한 진전이 이루어진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야말로 PK와 호남의 연합을 골간으로 하는 3번째 연횡 정권이라 부를 수 있다. 이번 연횡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3당합당으로 탄생한 영남패권주의가 30년 가까운 한세대가 흐르면서 서서히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향후 2~3년의 결과에 따라 파시즘적 군국주의를 뿌리로 하는 TK패권주의를 해체시키거나 주변화시킬 절호의 기회가 오고 있다.

촛불혁명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전국민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전인미답의 개혁과 비전을 추구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적폐청산과 새로운 정치질서의 탄생을 지향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한반도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촛불혁명의 완수는 연횡구조를 안착시키는 데서 시작된다.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다. 

호남과 PK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민주정부를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해야 한다. 개혁의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PK의 전면적 승리와 호남의 과감한 쇄신이 당면 과제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PK지역에서 영남패권주의 세력을 물리치고 민주화운동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 부산과 경남에서 승리한다면 총선 승리의 전망도 밝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PK는 다시 민주주의의 든든한 근거지가 될 것이다.

호남이라는 수레바퀴 역시 강해져야 한다. 민주평화당과의 합당이라는 구태의연한 정치공학보다는 호남의 쇄신을 통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친노와 친문을 규정하는 키워드가 ‘희생의 정치’라면, 호남정치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다. 호남이 민주정치의 축으로 위상을 회복하려면, 그동안의 지역독점적 기득권에서 탈피하여 가치중심의 개혁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호남과 PK는 이번 3번째 연횡만큼은 실패를 거듭하지 않고 견고한 정치연합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두 세력의 상호존중과 굳건한 연합을 통해 민주세력을 강화하고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구현할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잡으면 깨질까 불면 날아갈까’라는 조심스런 마음가짐을 강조한 바 있다. 북한과의 관계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PK와 호남의 연합도 이에 못지않은 자세와 정성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에 깔고 선거현장의 구체적 각론에 들어가 보자. 

그 누구도 평화로운 한반도를 원 하지 않는다(프레시안 : 안 문석 칼럼).



그 누구도 평화로운 한반도를 원하지 않는다?
 
[기고] 격동의 동북아, 미국·중국·일본의 다른 속내
그 누구도 평화로운 한반도를 원하지 않는다?
 
 
 
70년 동북아 냉전의 질곡을 타개할 수 있는 빅이벤트들이 우리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모두 비핵화를 핵심의제로 다룰 예정이어서 해빙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고 있다. 

그동안의 오랜 냉전은 우리의 정서와 문화, 정치, 경제에 너무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그래서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서구의 냉전이 와해된 것처럼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동북아와 한반도의 냉전 붕괴일로 기록되기를 기대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세계정치의 현실은 섣부른 낙관을 막아선다. 미국, 중국, 일본 모두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바라고, 이를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이들이 펼치는 외교안보전략을 살펴보면 자신들의 국익과 번영을 추구하고 있을 뿐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먼저 미국을 보자. 미국은 지리적으로 동북아에 위치한 것은 아니지만 동북아에 너무 많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사실상 동북아에서 패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동북아국가로 간주된다. 

1‧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영국을 넘어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1970년대 베트남 전쟁 실패 이후 이른바 '슈퍼 파워' 지위를 위협받아 왔다. 1980년대 말에는 일본이, 지금은 중국이 미국의 경제패권을 흔들고 있다. 중국은 이미 두 척의 항공모함을 가진 데 이어 지속적으로 국방비를 증액하면서 미국의 군사적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미주에서, 그리고 동북아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자원과 노력을 쏟고 있다. 작년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은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경쟁자들'(competitors)로 규정해 놓고 있다. 

발표 당시 이를 설명하던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핵심관료들은 중국과 러시아를 '현상변경세력'(revisionist powers)로 분명히 규정했다. 지금의 질서를 바꾸려고 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위험한 잠재적국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기본 인식을 바탕으로 미국은 중국의 성장을 저지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역외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 strategy)이다. 아시아 바깥에 있으면서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이 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대미 수출품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은 중국 경제 패권 저지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국방비를 대폭 늘리고, 최첨단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항공모함을 한반도 인근에 전개하고,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옵션'을 동원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중국의 군사적 패권을 막으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한국,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 파키스탄 등과의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중국을 완전 포위해 아시아에서 경제적·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을 저색하려는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활동 강화와 인근 필리핀, 베트남, 타이완 등과의 협력강화는 중국의 아시아 해양패권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문제는 미국의 역외균형전략이 한반도의 해빙에는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안보전략도 중국과 러시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하겠는데, 대표적인 것이 MD(미사일 방어체계)이다. 잠재적 적국 중국·러시아를 겨냥해 MD를 지속 개발해오고 있다. 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도 그 체계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대놓고 '중국·러시아를 향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잠재적 적국이지만 우선 경제를 중심으로 한 협력은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북한과 이란이다. 북한·이란이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는 MD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MD 개발에 북한이 중요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미국입장에서는 '조금씩 문제를 일으켜주는 북한'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소련, 북베트남, 이란, 탈레반, 북한 등 많은 적들과 긴장을 지속하면서 군사안보전략을 추진해왔다. 그 속에서 많은 무기도 팔 수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군산복합체를 성장시켜 왔고, 특히 공화당은 군수산업체들로부터 많은 정치자금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시기에 따라 적을 만들면서 미국 위주의 세계전략을 펼쳐온 것이다. 

그런 미국이 갑자기 북한과 화해하고 평화로운 한반도와 동북아를 원하게 된 것인지, 그 속에서 더 많은 국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인지, 분명치 않다. 

중국은 어떤가? 중국은 진정 북미가 화해하고, 남북이 평화로 가는 것을 바라는 것인가? 아직은 '아니다' 쪽이 답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경제를 지속 성장시켜 미국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국가주석 임기 폐지로 장기집권을 추구하고 있는 시진핑(習近平)으로서는 민심을 얻기 위해 지속성장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북미관계·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그에 따른 북한사회의 동요와 탈북자 급증은 중국으로선 반가운 일이 아니다. 동북3성의 조선족과 대량 탈북자들의 연계는 소수민족의 강화를 경계하는 중국에게는 우려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적 영향력도 확보하려 한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는 먼 옛날 얘기가 됐고, 이제는 분발유위(奮發有爲. 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한다)를 내세운다. 

우선은 동북아에서 영향력 확보가 급선무이다. 그러려면 미국을 넘어서야 한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상황은 미국이 중국의 코앞에 창을 들이대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반면, 지금처럼 한반도가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북한이 어느 정도 문제를 일으켜 주는 것은 중국의 동북아 영향력을 점증시키는 데 유리하다. 장막 속의 북한에 사람과 물자를 보내면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중국밖에 없다. 실제로 2003년 6자회담이 시작되고, 중국이 의장국을 맞으면서 동북아에서 중국의 목소리가 커졌다. 

장기적으로 중국은 북한과 혈맹관계를 존속시키면서, 경제적·정치적으로 이를 활용하는데 커다란 국익을 갖고 있다. 북한의 많은 자원을 활용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 지원세력이 아쉬운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외교적 지원도 필요하다. 

중국은 북한과 역사적으로, 이념적으로, 전략적으로 강한 연대도 유지해 왔다. 김일성의 항일유격대는 중국공산당군 내에서 활동하면서 무장투쟁을 했고, 지구상의 몇 안 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라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정치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으로서는 북한도, 동북아 질서도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현상유지(status quo)가 바람직한 것이다. 

이제 일본을 보자. 아베 정권은 철저하게 현실주의를 따른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워 동북아 주도권 경쟁에서 중국을 넘어서려 한다.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는 '아베노믹스'로 경제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군사력을 통해 세계와 지역의 평화에 기여한다는 '적극적 평화주의' 기치 아래 군사력 강화도 도모하고 있다. 아예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가려 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외교안보전략은, 동북아에서 부담은 줄이면서 패권은 유지하려는 미국과 이해를 같이 한다. 그래서 미일 동맹은 강화되어 왔다. 일본은 미국의 중국포위전략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강경한 외교안보전략을 추진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일본이 우선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이 북한이다. 북한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니 일본도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전략은 동북아의 냉전 구조에 기반을 둔 것이다. 중국-러시아의 대륙세력과 일본-미국의 해양세력이 맞서는 냉전구조가 아베 정부 외교정책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북미관계의 개선은 이러한 구조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고 아베정부 외교 안보 전략의 바탕을 흔드는 것이다. 그러니 일본은 여기에 박수를 보내고 있을 입장이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 전 아베가 트럼프를 만나려고 하는 이유도 그래서 분명하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려고 하는 대화에 너무 기대를 갖지 마라'라는 얘기를 트럼프에게 전하려는 것이다. 북미 관계 개선에 되도록 찬물을 끼얹고 싶은 것이다. 과거 6자회담장에서도 핵문제 해결보다는 일본인 납치사건 해결에 더 관심을 쏟으면서 회담진행에 부담을 주었던 일본이다. 

남북관계 개선도 일본 입장에서는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남북이 반목하는 것보다 남북이 한 목소리로 동북아에서 지분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일본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가 인구 8000만 명에 육박하는 큰 나라가 돼가는 상황이 일본으로서는 달가울 리 없다. 영토문제, 역사왜곡, 신사참배 등 일본 보수파세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즐겨 활용하는 소재들도 8000만 코리아의 상황에서는 함부로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전가의 보도가 있다. 납북자문제다. 북한과 관련해서 일본인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들먹이면 일본인들은 북한에 대해 곧 싸늘해진다. 보수세력은 북한을 괴이한 존재로 부각시키고 싶을 때면 납북자문제를 들먹인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 후 납북 일본인 5명이 열흘 뒤 귀환을 조건으로 일본에 귀국했다. 당시 관방 부장관 이던 아베 주도로 일본은 약속을 깨고 이들을 귀환시키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아베는 보수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2006년 총리가 되었다. 북미관계·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간다면 일본은 또다시 납치자 문제를 인권문제, 인도적 문제로 크게 부각시키면서 북한을 악마화하는 데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중국 견제에 주력하기 위해 이른바 불량국가(rogue state) 북한이 필요하고, 중국은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긴장된 남북관계가 나쁘지 않으며, 일본 역시 북한을 명분으로 강력한 외교안보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동북아 주요삼국 가운데 열일 제쳐두고 한반도 냉전 해체에 발벗고 나서려 하는 나라는 없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역은 한반도일 수밖에 없다. 남북이 합의하고, 지향점을 만들어 가면서, 탐탁치 않아 하는 주변국들을 설득해가야 할 것이다. 

소련도, 영국도, 프랑스도 모두 처음엔 독일통일에 반대했다. 하지만, 동서독이 신속하게 경제·사회 통합에 합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독의 콜 총리가 고르바초프, 대처, 미테랑을 설득해 내면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주변국의 입장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차대한 건 남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