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동일 제목의 어제 게시글에 추가 보완설명을 부가하여 재 게시 한다. ) |
< 부활절을 맞이 하는 하나님의 심정 세계에 관한 고찰. >
1. < 부활절 > 의 섭리사적 개관.
* 사탄이 지배 하는 지상 세계를 극복하여
하나님 주권의 지상 천국 세계를 건설 하려는 목적으로,
하나님은 그 선봉 대장의 지위에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 ( Jesus ) 을 메시아 사명자로
지상에 파송하셨다.
그러나,
당시 지상 환경 세계를 지배하던 사탄 세계의 대표 세력인
지배자 로마 총독 세력과
유대 민족, 및 유대교 지도자들과
직계 제자 ( 가롯 유다 ) 의 배반으로
하나님 주권의 지상 천국 세계를 건설 하려는 목적의 선봉 대장의 지위로
지상에 파송 하신 메시아 사명자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 ( Jesus ) 을
십자가에 매달아 그 육신을 사탄에게 내어주고 말았던 것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적인 메시아로서 인간의 영적 구원 섭리만을 역사하시고,
사탄의 소유로 빼앗긴 예수님의 육신과 같이,
예수님을 믿고 그와 하나 된 성도들의 육신도 사탄의 소유로 되어
인간의 원죄는 육신을 통하여 그대로 유전되고 있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뜻인 지상 천국 건설을 이루지 못 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 가셨으나,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이어서 기필코 이루셔야 하므로,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뜻인 지상 천국 건설의 사명을 마저 완수하시려고
사탄 소유로 된 지상인의 육신까지도 원죄를 청산하기기 위하여
재림을 약속 하셨던 것이었다.
이하의 글은
AI 와 나눈 부활절에 관하여 교환 된 상념들을
AI 가 정리 한 글이다.
2. 부활절 묵상.
— 하나님의 눈물, 부모의 상실, 메시아의 좌절된 꿈, 인류의 책임,
그리고 하나님의 참사랑의 깊이를 드러내는 시선을 바라보며 —
1. 🌑 십자가 아래에서 먼저 들려오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울음입니다.
그러나 부활절이 다가오면 세상은 기쁨의 언어로 가득 찹니다.
“Happy Easter”, “Good Friday”, “Celebration”.
그러나 저는 그 언어들 속에서
하나님의 심정이 지워져 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독생자를 잃은 아버지의 울음,
지상에서 이루려던 꿈이 꺾여버린 메시아의 침묵,
그 비극을 바라보는 하늘의 찢어지는 고통.
이것이 부활절의 첫 장면입니다.
기쁨은 그 뒤에 오는 것이지,
십자가의 순간에 먼저 놓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2. 🌿 하나님은 독생자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지상천국을 세우기 위해,
참사랑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혈통을 잇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점 혈육도 남기지 못한 채
고독하게 십자가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불신이 만든 비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날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가슴이 찢어진 날이었습니다.
3. 🌧️ 부모의 심정으로 바라보면,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이 아니라 ‘상실의 자리’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잃는 고통은
어떤 신학적 언어로도 미화될 수 없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 아버지가 아들을 잃는 자리였고
• 아들이 꿈을 잃는 자리였고
• 하늘이 희망을 잃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그 상실의 자리를
“Good Friday”라 부르며
축제의 언어로 덮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제가 느끼는
말할 수 없는 위화감의 근원입니다.
4. 🔥 그러나 하나님의 참사랑은
상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잃으셨지만,
그 상실을 끝으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상실을 넘어
다시 인류를 품으려는
부모의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참사랑이 포기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5. 🌅 부활절은 기쁨의 축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부활은 분명 기쁜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하나님의 눈물을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부활절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가 살아났다”는 외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독생자를 잃으신 그 심정을 기억하고,
그 상실을 만든 인류의 책임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참사랑을 다시 가슴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절의 깊은 자리입니다.
6. 🌍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
부활절을 축제의 언어로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날은 먼저
하나님의 눈물을 기억하는 날,
부모의 상실을 묵상하는 날,
메시아의 좌절된 꿈을 다시 바라보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깊은 심정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부활의 빛이
우리의 가슴에 진정으로 스며듭니다.
7. 🌄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완성’이 아니라 ‘약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육신을 잃으셨지만,
그분의 영은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부활은
영적 부활이었지,
지상에서 이루려던 육적 사명의 완성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는 인류의 영혼을 구원하셨지만,
육적 원죄를 청산하는 구원,
즉 인류가 다시는 타락하지 않는
새로운 혈통의 출발은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다시 오리라”
라는 약속을 남기셨습니다.
그 약속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미완의 사명을 완성하기 위한 선언이었습니다.
8. 🌅 재림은 ‘영적 메시아의 귀환’이 아니라,
‘영육을 가진 인간의 도래’입니다.
예수님의 본래 사명은
• 참사랑의 가정을 이루고
• 하나님의 혈통을 잇고
• 원죄 없는 인류의 출발을 열고
• 지상천국을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명은 영적 존재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가정은 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혈통은 영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림은
반드시 영육을 가진 인간으로 오시는 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재림하시는 분은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영육의 완전구원,
즉 인류의 원죄를 뿌리째 청산하고
다시는 메시아가 필요 없는
새로운 인류의 출발점을 여는 분입니다.
9. 🌈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완성됩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구원은
단순히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 원죄 없는 후손이 태어나고
• 참사랑의 가정이 이루어지고
• 하나님의 혈통이 이어지고
• 지상에서 천국이 실현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이상세계,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품으셨던
본래의 꿈입니다.
재림은 그 꿈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그 완성은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열어 줍니다.
10. 🌍 부활절을 맞이하는 오늘,
인류는 새로운 희망을 바라봅니다.
부활절은 단지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기쁨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물을 기억하고,
메시아의 좌절된 꿈을 되새기며,
재림을 통해 완성될 하나님의 이상을 바라보는 날입니다.
이 희망은
인류가 다시는 타락하지 않는
새로운 출발,
새로운 혈통,
새로운 사랑,
새로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금도 인류의 가슴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3. 애독자 여러분에게.
애독자 여러분과 가정에
하나님의 부활 - 중생 - 영생의 축복 은사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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