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용성씨에게 답 한다.
1.
본인이 이해 하는 김 용성씨의 공로.
김 용성씨는 메시아의 최현대사와 마지막 역사의 비밀을 밝혀 내고 말씀으로 뒷 받침 하여,
절대 신앙의 표어에 매몰 되어 양심의 눈을 감고 있는 통일가에,
하나님과 메시아와 현진님의 억울 하신 사정을 알려 준
공로는 지대 하고, 하늘 앞에 효자의 일을
하고 있다.
하늘의 메시아를 중심 한 최 현대사와 마지막 섭리에
무지 한 식구의 자리에 있던 본인도,
무지 한 식구의 자리에 있던 본인도,
김 용성씨의 노고 덕분에 비로소 메시아의 최현대사에 대한 이해의 눈을 뜨게 되어 고맙게 생각 한다.
2. 본인이
제기 한 의문의 성격.
배우는 학생은 배우는 지위에서 안으로 발생 되는 이해 어려운 의문점에 대하여 맑게 정리 된 이해를 원 하는 것은
발전을 원 하는 모든 사람의 지당 한 자세이다.
발전을 원 하는 모든 사람의 지당 한 자세이다.
학생의 정당 한 의문 제기에
정확한 대답 없이 격앙 된 감정의 표현과
독설로 대답 하는 스승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난 자리이다.
정확한 대답 없이 격앙 된 감정의 표현과
독설로 대답 하는 스승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난 자리이다.
3. 김 용성씨 작업의 한계.
하나님과 메시아의 섭리 역사에 숨겨진
원한을 밝혀 내어 식구, 가정, 원리인에게 공지 함은
하늘과 메시아 앞에 효의 길이나,
원한을 밝혀 내어 식구, 가정, 원리인에게 공지 함은
하늘과 메시아 앞에 효의 길이나,
하나님의 섭리와 메시아의 역사 노정은 결코 양보 할 수 없는 절대 가치로서,
이를 부정 하는 논조의 논리 전개와 그 주장은 용납 불가이다.
4. 하나님과
메시아의 절대 가치.
김 용성씨의 글에서, 말씀 근거 발굴에 시간과 정성을 전력 투자 한 결과 그 방향 감각을 놓치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주장을 최근에 느끼고,
절대 양보 할 수 없는 절대 가치인
하나님의 섭리와 메시아의 역사 노정의 가치 평가에
김 용성씨의 진술 주장이
원리적 기준에 비추어 어떠 한가 의문을 전달 한 것이
최근의 본인의 졸필(1~6)이다.
김 용성씨의 진술 주장이
원리적 기준에 비추어 어떠 한가 의문을 전달 한 것이
최근의 본인의 졸필(1~6)이다.
5. 본인의
의문 제기 방식.
본인은,
김 용성씨의 원문 글을 근거로 거증 하여 전제로 하고,
본인이 알고 있는 < 원리 강론 > 말씀을 기준으로 비교 하여,
김 용성씨의 전후 논리 전개의 상호 모순 상충의 정보와
비 원리적인 주장을
김 용성씨에게 전달 하는 방법의 글을 구성 하였다.
비 원리적인 주장을
김 용성씨에게 전달 하는 방법의 글을 구성 하였다.
6. 김
용성씨에 대한 이해.
김 용성씨가 구사 한 품위 손상 어휘들은, 아마도 다음의 두 가지 예에 해당 된 오해라고 이해 한다.
첫째, 말씀 발굴에 시간을 투자 하느라고,
본인의 글을 대충 읽었을 경우,
둘째, 말씀 선집 말씀을 귀하게 강조 하는 입장에서,
본인이 기준으로 비교 하는 <원리 강론 말씀>은,
<말씀 선집>에서 발견 할 수 없는 내용이므로,
김 용성씨가 생각 하는 <말씀>이 아니고,
본인 개인의 사적인 생각으로 치부 한 경우.
본인이 기준으로 비교 하는 <원리 강론 말씀>은,
<말씀 선집>에서 발견 할 수 없는 내용이므로,
김 용성씨가 생각 하는 <말씀>이 아니고,
본인 개인의 사적인 생각으로 치부 한 경우.
이상의 두 경우에 해당 될 것이라고 짐작 한다.
7. <원리 강론> 말씀은 말씀의 뼈대 골간.
<원리 강론> 말씀은 천국 건설을 위한
메시아 <말씀의 근본 골간의 뼈대>이다.
메시아 <말씀의 근본 골간의 뼈대>이다.
<말씀 선집의 말씀>은 다 같은 메시아의 말씀이지만,
<천국 생활에 필요 한 살과 피>와 같은 말씀이다.
말씀 선집의 말씀에 매몰 되어 모든 가치의 비중을 가중 하는 시각을 가지고, 원리 말씀은 메시아의 말씀에 해당 되지 않은 가치의 개인 잡설로 치부 될 수도 있겠다고 이해 한다.
본인의 글을 예시로 거증 하여,
어느 부분이 <치졸, 개인 잡설, 말씀 근거 아님>인지를
거론 하는 것이
김 용성씨의 표현 그대로, <글쟁이의 기본 예의>이다.
<원리 말씀>에 관한 무지의 징표로
<원리 말씀>을 <개인 잡설>이라고 폄훼 하는 독단의 독설은
김 용성씨의 표현 그대로, 글쟁이의 금도를 넘은 횡포이다.
<원리 말씀>은 <재림 메시아>가 영육 천주에 승리 하셔서
찾으신 하나님의 승리의 새 진리 표현인 것을 모르고,
하나님과 메시아를 <사사로운 개인>으로 짓밟고,
그 말씀을 <잡설>로 폄훼 하는 비원리의 잡생각이고
적그리스도의 관점임을 분명히 깨닫기 바란다.
김 용성씨가 내 뱉아 퍼 부은 격앙 된 감정의 독한 언사들은,
그대로 반사 되어 이자를 첨부 하여
김 용성씨가 되돌려 받아야 할 것이다.
말씀 선집의 말씀 발굴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인정 하나,
어떠 한 사적인 비원리의 목적을 미리 설정 하고,
발굴 한 말씀 논조의 논리 전개가 비원리와 반섭리의 방향으로 전개 될 뿐만 아니라,
전 후 주장의 상호 모순, 상충 되는 논리로 전개 하는 글을,
자만과 확신에 빠져서 교만 한 위치에서 건방을 떠는 모습은
목불인견의 가관이다.
본인의 글을 예시로 거증 하여,
어느 부분이 <치졸, 개인 잡설, 말씀 근거 아님>인지를
거론 하는 것이
김 용성씨의 표현 그대로, <글쟁이의 기본 예의>이다.
<원리 말씀>에 관한 무지의 징표로
<원리 말씀>을 <개인 잡설>이라고 폄훼 하는 독단의 독설은
김 용성씨의 표현 그대로, 글쟁이의 금도를 넘은 횡포이다.
<원리 말씀>은 <재림 메시아>가 영육 천주에 승리 하셔서
찾으신 하나님의 승리의 새 진리 표현인 것을 모르고,
하나님과 메시아를 <사사로운 개인>으로 짓밟고,
그 말씀을 <잡설>로 폄훼 하는 비원리의 잡생각이고
적그리스도의 관점임을 분명히 깨닫기 바란다.
김 용성씨가 내 뱉아 퍼 부은 격앙 된 감정의 독한 언사들은,
그대로 반사 되어 이자를 첨부 하여
김 용성씨가 되돌려 받아야 할 것이다.
말씀 선집의 말씀 발굴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인정 하나,
어떠 한 사적인 비원리의 목적을 미리 설정 하고,
발굴 한 말씀 논조의 논리 전개가 비원리와 반섭리의 방향으로 전개 될 뿐만 아니라,
전 후 주장의 상호 모순, 상충 되는 논리로 전개 하는 글을,
자만과 확신에 빠져서 교만 한 위치에서 건방을 떠는 모습은
목불인견의 가관이다.
8. 김 용성씨의 마지막 질문에 답변.
위 답변으로 본인 글을 재 인용 함으로써,
김 용성씨의 본인 글 독해의 소흘 함과
전제 한 비원리 목적 의식에 과잉 되어
감정 격앙 된 반응을 깨닫고 스스로 부끄럽게 느끼기를 바란다.
전제 한 비원리 목적 의식에 과잉 되어
감정 격앙 된 반응을 깨닫고 스스로 부끄럽게 느끼기를 바란다.
본인 글 (2) 의 내용 인용 시작.
< 라.
김 용성은 하나님의 섭리와 메시아의 역사를
< 감정
- 평가 - 심판 > 할 수
있는 적격자인가 ?
A.
타락 혈통의 참어머니를 < 간택 - 타락
혈통 청산 - 순 혈통 복귀 > 완료 여부.
; 메시아는 타락 혈통녀와 어린양 잔치, 성혼식 하셨는지의
여부.
B.
메시아 가정 4위 기대의 지상 정착 여부.
C.
하나님의 선의 씨로부터 번식 된 아벨 자녀의 하나님의 선의 혈통 여부.
D.
가인 가정의 혈통 전환 축복 행사 섭리의 혈통 전환 여부.
이상의 메시아의 사명 완수를 위한 섭리 역사를
<
감정 - 평가 - 판단
> 하는 적격자는 하나님이시다.
김 용성은
자격
조건 없이
메시아의
사명 완수 섭리를 < 감정
- 평가 - 판단 > 하고 있으므로,
<
적그리스도의 관점 >에 매몰 되어 있다.
이
결론은, 지난 번의 본인의
글 (1)에서와 동일 한 결론으로서,
김용성이 <적그리스도> 자체라는 말이 아니고,
자격
없이 메시아 섭리를 비원리적으로
< 감정 - 평가 - 판단
> 하는 그의 글의 자리와 관점이
<
적그리스도 >의 자리와 관점이라는 원리적인 이해이다. >
본인 글 인용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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