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5일 수요일

叢書 : line 37.


叢書 :
line 37.




*** 叢書 : line 37.




* 이와 같이 알고 보면 종교와 과학은
인생의 양면의 무지에서 양면의 지에로 극복 하기 위하여
양면의 진리를 찾아 나온 방편임을 알 수 있다.








* Religion and science, in their own spheres,
have been the methods of searching for the truth of both side
in order to conquer the human ignorance of both side and
attain the human truth of both side.






* 위 영문의 Syntax diagram 을 아래에 게시 한다.
 
 

2019년 6월 3일 월요일

叢書 : line 36.





叢書 :
line 36.
​
​
​
​*** 叢書 : line 36.
​
​
​
​
​
​
​
​
​
* ​ 그리하여
내적인 무지에서 내적인 지에로 극복하기 위하여
내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종교요,
외적인 무지에서 외적인 지에로 극복하기 위하여
외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과학이다.
​
​
​
​
​
​
* ​The path,
for humanity to overcome from internal ignorance to internal truth,
of searching for internal truth
is religion, and
the path,
from external ignorance to external truth,
of searching for external truth,
is science.








*  위 영문의
Syntax Diagram을
아래에 게시 한다.
​
 
 
 
 

어린이 靈魂의 成熟을 도와 주는 어른의 智慧로운 깨달음에 관한 고운 글.


어린이 
靈魂의 成熟을 
도와 주는 

어른의
 智慧로운 깨달음에 관한 
고운 글.






어른 역할은 학생 생각하는 힘 키우는 것
[학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40> 8. 질문할 시간, 생각할 시간을 줘야
2019.06.03 10:53:10
어른 역할은 학생 생각하는 힘 키우는 것
학생들에게 물었다. 발아(發芽)의 3대 조건이 무엇이냐고? 
발아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의 아이들이 많아서 
'싹이 틀 발(發)' '싹 아(芽)'로
'식물의 싹이 나는 것'이라 설명해 주었지만
흙, 물, 햇볕, 영양분, 공기, 비료 등을 이야기할 뿐 
'온도' '산소' '수분' 세 가지를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배운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서너 명의 아이가 있을 뿐이었다.   

무엇을 공부하는가?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가? 
배웠음에도 알지 못하는 공부, 시험이 끝나면 잊어버리는 공부, 
생각 없이 암기하고, 이해 없이 암기만 하였다 잊어버리는 공부.  
10개월간 독일 고등학교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학생은, 
독일 친구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하던데.......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공부해왔고 
아무 생각 없이 생활해 왔음이 부끄러워졌다고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있는데 
멜로디의 아름다움에 취해서가 아니라 
자막으로 나오는 노랫말 음미하는 일에 재미 붙였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부끄럽게도 젊은 날에는
노랫말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리듬 박자에만 신경 쓰면서 흥얼거렸다. 
노랫말을 음미하며 노래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새로운 즐거움이 찾아와 날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노랫말의 의미도 모른 채 노래 흥얼거리는 것은 
절반의 즐거움일 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만날 때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헤어질 때 아름다운 사랑이 되자, 잠깐만 잠깐만……" 
정신이 맑아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랫말이었다니?
몇 십 번 들었기에 가사까지 외울 수 있는 노래임에도
생각 없이 듣고 불렀으며 진정한 맛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커다란 슬픔과 함께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행여나 돌아서서 
우린 미워하지 말아야 해......."
라는 '파초'의 노랫말 역시 근래에 깨달은 기쁨이다. 
바보였다.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중얼거리기만 하였던 바보, 
생각해보려는, 음미해보려는 노력 전혀 하지 못하였던 바보.
 
선생님의 강의 듣긴 들었지만 친구에게 설명해주진 못한다. 
노트에 적었지만 적었다는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문제 풀었으면서도 설명할 능력은 없다. 
대충 아는 것은 많지만 진짜 아는 것은 너무 적다. 
대한민국 학생의 슬픈 민낯이다.

생각하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지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어른들의 역할이다. 
아이들은 아직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대신하여 생각해주는 것은 나쁘지만 
생각할 기회 주고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어른들의 책무다. 
육체의 성장을 위해 음식을 제공하듯 
영혼의 성장을 위해 생각할 기회를 주고 생각하도록 도와야 옳다.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일보다 중요한 어른의 역할은 없다.  
질문하고 또 질문하라.
생각할 시간을 주고 생각하도록 유도하라.
함께 고민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출제위원장은 매 번 
사고 능력을 측정할 수 있도록 출제하였노라 이야기한다.
틀린 말 아니라 생각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졌다. 
단순 암기력 측정을 위한 문제 아닌   
사고력 측정을 위한 문제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생각할 시간 너무 적게 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어진 시간에 비해 문제가 너무 많고 지문도 너무 길어
생각할 여유 가지고 깊게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사고력을 측정하고자 한다면 
지문의 길이를 줄이든 문제 수를 줄이든 
시간을 더 주든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스스로 생각할 기회 주고
스스로 생각하여 결론 이끌어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
교육에서 엄청 중요하다.

包容的 成長으로 國民 幸福의 力動的 福祉 國家 建設 路程에서 解決 해야 할 政治 社會學的 課題.





包容的 成長으로
 國民 幸福의 
力動的 福祉 國家 
建設 路程에서 
解決  해야 할 
政治 社會學的 
課題.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고임금'이 문제다
[복지국가SOCIETY] 최저임금과 최고임금, 조양호 전 회장의 연봉과 퇴직금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고임금'이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 혁신성장, 소득주도성장이 날개를 채 펼치기도 전에 비판과 저항에 부딪쳐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특히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 경제를 만들자는 소득주도성장의 의미는, 바로 최저임금상승으로 치환되는 바람에 경제적 약자들 간의 대립과 다툼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최저임금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높은 부동산 가격, 선진국보다 2~3배 높은 영세 사업자 비중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정부의 섬세한 정책 역량이 부족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의 큰 담론은 흐릿해지고, 최저임금 논란만이 남아 우리 사회를 배회하면서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최저임금 상승에 대다수 보수언론이 비난에 가까운 시선을 보이고, 여론은 여기에 집중되었지만 최저임금 못지않게 최고임금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생산과정에 참여한 이들이 자신들이 기여한 것보다 적은 대가를 받는다면, 다른 누군가는 기여한 것보다 많은 대가를 받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 경제 원리다. 기업과 자본 친화적인 우리 사회의 주류 언론은 최저임금에는 엄격한 비판을 가했지만, 고액연봉자를 향해서는 좀처럼 비판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조양호 전 회장의 퇴직금으로 본 적정성 논란

지난 몇 해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대한항공 조양호 전 회장이 지난달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 딸들의 갑질 파동, 횡령, 배임 등은 우리나라 대기업이 어떤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과 불법 행동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사에서 매우 드물게 조양호 회장은 임원진에서 배제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그런데 조양호 전 회장의 퇴직금이 대기업 임원의 퇴직금 적정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조양호 전 회장은 최근 한진칼, 대한항공, ㈜한진에 집중했지만 2018년까지는 대한항공, 한진칼, ㈜한진, 진에어, 한국공항 등에 대표이사·회장 자격을 유지했다. 대한항공 사업보고서에 의하면, 조 회장은 지난해 약 27억 원의 보수와 4억3000만 원의 상여를 받아 총 31억3044만 원을 수령했다. 월 평균 2억6087만 원이다. 이밖에도 한진칼 회장으로 26억5830만 원, 한진 회장으로 11억985만 원, 진 에어 회장으로 14억9621만 원, 한국공항 회장으로 23억2335만 원 등 모두 107억1815만 원의 연봉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45년 동안 근속한 조양호 전 회장의 퇴직금(평균월급×근속연수)을 계산해보면 약 117억 원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임원에게 적용되는 퇴직금 지급률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2015년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회장에 한해 퇴직금 지급률을 6배로 인상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퇴직금 지급률은 대기업 임원에게만 있는 특별한 '배수'다. 대다수 기업들이 임원 퇴직금 지급률을 갖고 있지만 정확히는 공개하지 않는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2015년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상장기업들은 임원 퇴직 시 대체로 3배의 지급률을 적용한다고 한다. 대한항공의 지급률 6배를 대입하면, 조양호 전 회장의 퇴직금은 대한항공에서만 704억349만 원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체의 직책까지 포함하면 일반인은 상상하기 어려운 퇴직금을 수령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을 제외한 다른 한진 계열사는 퇴직금 지급률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통상적인 3배수를 적용하면 조 전 회장의 예상 퇴직금은 1085억 원이고, 대한항공의 지급률 6배를 모두 적용하면 최대 1465억 원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여기에다 대표는 아니지만 이사로 등재된 부동산회사 정석기업, 한진정보통신, 한진관광 등의 연봉까지 합치면 조 전 회장의 퇴직금은 다시 수십 억 원이 오른다.

이런 대기업 CEO의 급여와 퇴직금이 정상적일까? CEO는 자기 연봉을 직접 정하기에 통제할만한 장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과연 받는 연봉만큼 그의 능력이 뛰어나고 회사에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을까? 대한한공 임원을 제외한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8083만 원인데, 조 전 회장은 이들보다 133배나 많은 임금을 받았다. 설사 현대 자본주의의 능력주의제를 인정하더라도 조 전 회장이 일반 직원보다 133배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결과를 누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위스의 'CEO 연봉 제한법'과 한국의 '살찐 고양이법'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만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직접민주주의가 발달한 스위스에서도 대기업 CEO의 고액 연봉 때문에 최고임금에 대한 국민투표가 발의됐다. 2013년 스위스는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꼽혔던 투자은행 UBS가 12명의 경영진에게 7010만 스위스 프랑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하고, 제약사 노바티스의 다니엘 바젤라 회장이 7200만 달러(846억 원)의 퇴직금을 받기로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확산됐다. 이에 '토마스 민더'라는 상원의원이 'CEO 연봉 제한법'을 발의했고, 국민투표를 통해 68%의 찬성률로 통과되었다. 이 법안에 따르면 CEO 급여는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회사는 6년 동안의 CEO 급여를 벌금으로 내거나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또 해당 법안은 CEO가 회사를 떠나거나 다른 기업을 인수 합병할 때 받던 거액의 수당도 없애도록 했다.

스위스에서는 이 법의 영향을 받아 더욱 강화된 '1:12 이니셔티브'라는 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한 기업 내 최저임금과 최고임금 차이를 12배 이내로 억제하는 이 법안은 비록 국민발의는 성사되었지만, 최종적으로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 12배가 과도하다는 지적과 함께 기업 CEO의 임금을 주주들이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한도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이 거부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스위스 등의 영향을 받아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2016년 한국판 '살찐 고양이법'을 발의했다. 전문경영인 등의 과도한 보수를 규제하는 이 법안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민간기업 임직원은 30배, 공공기관 임직원은 10배,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는 5배를 초과하여 받지 못하도록 했다. 이 법률에 따르면, 2016년 최저임금액(월 126만여 원)에 따라 민간 법인의 전문경영인이 연간 약 4억5000만 원을 초과하는 보수를 받게 될 경우, 부담금 또는 과징금이 부과되는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된다.

심 의원이 제시한 근거 자료를 보면, 10대 그룹 상장사 78곳의 경영진 보수는 일반 직원의 35배, 최저임금의 180배에 달한다고 한다(2014년 기준). 또한 323개 공공기관 가운데 기관장의 연봉이 1억50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도 130곳에 이른다. 이를 근거로 심 의원은 "임금 소득에서 상위 10%와 하위 10%의 평균 격차는 11배로, OECD 평균인 5~7배를 웃돌아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협동조합 그룹 몬드라곤 실험에서 배울 점은?

기업 내에서 생산과정에 참여한 이들에게 어떤 임금 체계를 제공할 것이냐는 경영상 중요한 문제다. 생산만큼 어려운 것이 분배의 문제이기 때문에 분배의 공정성, 민주성, 투명성을 가져가지 않으면 생산의 효율도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 고용창출 3위, 재계서열 7위, 매출순위 8위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Mondragon Corporation Cooperative)은 연매출 30조 원(2014년)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사례로 흔히 제시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연매출 30조 원은 우리나라의 재계순위 6~7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몬드라곤은 스페인 북동부 바스크 지역의 도시인 몬드라곤에서 1956년 돈 호세 마리아 신부의 지도 아래 5명의 조합원이 모여 첫 번째 노동자 협동조합인 석유난로 공장 울고(Ulgor)를 설립함으로써 시작됐다.

60여년이 지난 현재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은 산하에 257개의 협동조합 및 기업과 15개의 연구센터에서 약 7만4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자본주의적 기업의 병폐인 분배의 불평등으로 인한 빈부격차의 확대, 경영의 비민주성, 노사갈등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인식에서 시작된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노동자가 직접 소유하고 경영하는 기업, 발생한 수익이 노동자들에게 고르게 분배되는 기업의 대명사라고 볼 수 있다.

일반 기업 의사결정이 많은 주식을 보유한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반면,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는 노동자가 총회에서 직접 최고 경영자를 선출 또는 해임할 수 있다. 잉여금도 주주이자 노동자인 구성원들에게 고르게 분배된다. 설립 초기에는 최저임금과 최고임금 간의 격차를 1:4 이상이 되지 않도록 해서 분배의 불균형을 방지하도록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노동자의 천국, 경영자의 지옥'으로 불리기도 했다.

때문에 차츰 이 부분을 완화해서 지금은 기업 내에서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의 격차가 최대 8배가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몬드라곤 그룹은 그 규모에 달하는 세계 기업에 비하면 임금 격차는 비할 수 없이 적지만, 어느 곳보다 탄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 CEO의 최고임금의 적정선이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죽음 앞에서는 매우 관대하다.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든 간에 죽음 앞에서는 너그러운 평가를 내리고 인생무상을 이야기한다. 조양호 전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막대한 유산과 퇴직금 같은 돈 이야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다. 조양호 전 회장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최저임금과 함께 최고임금 이야기를 꺼내고, 최저임금만큼이나 치열하게 최고임금의 적정선에 대한 논쟁을 해야 한다. 경제는 단순한 능력 있는 이들의 돈벌이가 아니라, '세상을 경영하고 민중의 삶을 구제하는(經世濟民)'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포용적 성장을 거쳐 국민행복의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서 이 부분을 정치사회적으로 꼭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亡國黨 빈골들의 腦細胞 組織 作動은, 아래 글의 검은 部分은 企業 삥땅 건덕지로 눈 앞에 어른거리고, 흰 部分은 靑瓦臺 앞 孝子洞 사거리로 눈 앞에 어른거릴 줄 안다. 嗚呼痛哉라 ! ! !


​ 
⁠亡國黨 빈골들의 
腦細胞 組織 作動은, 
 
아래 글의 검은 部分이 
企業 삥땅 건덕지로 
눈 앞에 어른거리고, 
 
흰 部分이 
靑瓦臺 앞 孝子洞 사거리로 
눈 앞에 어른거릴 줄 안다. 
 
嗚呼痛哉라 ! ! !
 
 
 









망언·망발 일삼는 클레망스들에게
[사회 책임 혁명] 정치인들 언어가 공해로 남지 않으려면…
망언·망발 일삼는 클레망스들에게
망언·막말, 트집 잡기, 생떼로 표현되는 정치인들의 '언어 공해'가 심각하다. 미세먼지와 체감경기에 대한 불안으로 시달리는 시민들에게 과도하게 장기화되는 국회 공전과 그에 따른 언어 공해는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게 한다. 진영을 막론하고 국회에서 소통하지 않을 요량이면 모두 정치인이라는 이름을 걷어야 한다.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펴보건대, 소통 부재의 시발점은 언제나 정치인의 못난 입이었다. 못난 입은 갖추지 못한 사고에 기인한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여성 상품화 발언과 장애인 차별 발언은 화자의 저열한 의식을 부지불식 간 드러내는 정도지만 최근의 세월호 유족 혐훼, 5.18 왜곡과 관련한 경쟁적 발언들은 차기 총선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피해자들의 묵은 상처를 공공연히 헤집고 애써 이룬 국민적 합의를 뒤흔드는 반사회 의도가 분명해서 한층 심각하다. 정치 권력의 피해자에 대한 신중한 배려를 외면한 채 국회 밖으로 돌려 쏟아내는 드잡이 식 정당 발언과 과도한 자당 의원 감싸기 또한 향후 총선을 고려하더라도 시민의 정서에 맞지 않아 지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인들이 정제된 사고로 시민사회의 지지를 동반할 화법은 없는 것일까? 1970년대에 청년 시인 김지하는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는 산문에서 냉소∙조롱보다 더 직관적이고 날카로운 궁극적 무기가 '풍자(諷刺)'라 하였다. 그의 말을 빌리면, 풍자는 "영혼으로 승리하려는 자, 생생하게 불꽃처럼 타오르려는 자"가 선택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오적(五賊)>, <비어(蜚語)>, <똥바다(糞氏物語)>는 박정희 군사독재의 부패와 그 바탕이 된 일본의 경제적 침탈을 신랄하게 까발리고 저항하는 풍자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 기반은 닥친 현실을 시민사회에 시각으로 해석하고 정리하면서 벼리어진 통찰이다. 노년의 김지하와 달리 청년 김지하가 훨씬 빛나고 설득력 있는 이유다.

우리 곁에도 날카로운 촌철살인의 풍자로 홍수처럼 쏟아지는 상대의 말을 멈추게 하던 정치인이 있었다. 남들에게는 풍자로 답하지만 자신에게는 너무 엄격해서 스스로 풍자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노회찬이 그다. 청년 김지하가 유장한 풍자의 대가라면, 노회찬은 간명한 풍자의 모범이다. 정치수사(政治修辭)는 그의 취향이 아니다. 그의 풍자는 삶의 현장과 거리에서 풍상을 맞아가며 생성된 칼날이었다. 자신의 사고를 앞세우기보다는 이를 수용할 사람들 관점에 기초했기에 접근이 쉽고 설득력이 높았다. 해학도 여유도 빈곤한 요즘 정치계를 보노라면 먼저 떠난 그가 야속하고 새삼 그립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정계에는 자신의 사고에 매몰된 클레망스가 많은 듯하다. 클레망스는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의 소설 <전락(轉落)>의 주인공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은 뛰어난 변호사여서 법 위에 군림하면서도 정의롭다고 믿었던 그, 그러나 마땅한 도의를 방기한 사건으로 인해 시민들의 조소를 느끼며 자신의 위선과 마주하게 된다. 날이 갈수록 자신이 지배하던 법에 자신이 심판받을까 초조해하고 사람들의 비난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시달리지만 끝내 자신의 행동에 대한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한다. 참회 없이 스스로를 기망하는, 자괴와 합리화의 악순환에 갇힌 부조리(不條理), 이를 전락이라 한다.

요즘의 정치인들에게서 '클레망스 데자뷔'를 경험하는 시민들 대다수는 정치인들에 대한 조소를 거두지 않고 있다. 클라망스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허영과 위선이 드러날까 두려워 더욱 사납게 모진 소리를 반복하면서 다음 총선의 민의가 자기편이라고 확신하지만, 스스로의 참회가 부재하다면 당락과 무관하게 전락은 계속될 것이다.

풍자의 수준에 이르기는 매우 어렵다. 스스로의 성찰을 요하는 자기검열과 참회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마시라. 외풍으로부터 자기중심을 분명히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이 있다. 경청과 침묵이다. 정현종 시인은 <경청>을 이렇게 표현했다.

"불행의 대부분은 /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 비극의 대부분은 /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 아, 오늘날처럼 /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 (중략) /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 세상이 조금은 좋아 질 듯,"

침묵 또한 효율적 대안이다. 침묵은 입으로 재난을 부르는 정리되지 않은 사고를 진정시킨다. 하여 집착과 아집의 질주를 제어함으로써 본질을 응시할 수 있게 한다. 가시 돋친 말을 하는 자신이 장미라고 착각하는 정치인들에게, 자신이 스스로 푸른 하늘이라고 도취한 정치인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부디 정치인들의 언어가 공해가 아닌 품격의 표준으로 인용되기를 기대하며, 강은교 시인의 <사랑법>으로 글을 마친다.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 침묵할 것 // (중략) 서둘지 말 것 / 침묵할 것 // (중략) 쉽게 꿈꾸지 말고 / 쉽게 흐르지 말고 / 쉽게 꽃피지 말고 / 그러므로 // (중략)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 그대 등 뒤에 있다"
 
 

2019년 6월 2일 일요일

⁠​軍事 叛亂 쿠데타 煽動 하는 황교활을 국보법 도깨비 방망이로 處斷 해야 한다. 國軍 統帥權者는 어디에 있으며 國防 長官은 무얼 하고 있는가 ! ?

​

軍事 叛亂
쿠데타 煽動 하는

황교활을
국보법 도깨비 방망이로
處斷 해야 한다.

國軍 統帥權者는
어디에 있으며

國防 長官은
무얼 하고 있는가 ! ?

















한국당 '혐오의 정치'를 보며 노무현을 생각한다

[최창렬 칼럼] 다시, 시민이 나서야 한다






한국당 '혐오의 정치'를 보며 노무현을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주는 울림과 감동은 그가 추구한 정신에서 연유한다. 시대가 노무현을 끊임없이 소환하는 이유도 정치개혁, 검찰개혁, 남북화해, 균형발전 등 의제의 무게가 엄중하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이 지지층을 결집하고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하려 노무현을 이용한다는 생각은 협량하다. 정치공학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노무현이 추구했던 가치는 주류 기득권의 독점적 카르텔 체제의 해체와 소득 불평등·양극화 해소 및 공정·정의의 문제로 귀결된다.

지금의 정치체제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정당은 사회 조정과 갈등의 통합을 모색하기커녕 선거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수구세력은 여전히 해체되지 않고 있는 냉전구조와 분단체제를 방패삼아 호시탐탐 색깔론과 이념공세를 일삼는다. 박근혜 탄핵 때 광장을 달궜던 시민의 열기가 사라지고 그 공간은 증오와 혐오의 언어들로 넘친다.

정치는 과장된 말의 파편과 이를 둘러 싼 퇴행적 공방으로 날을 샌다. 극단적 혐오와 증오를 동원하여 지지층 결집을 노리며 당내 결속과 리더십 확보의 결과물을 챙기려는 제1야당 대표의 행보는 정치 부재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정당은 권력을 탐닉하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한다. 우리나라에도 꽤 알려진 영국의 정치사회학자인 톰 보토모어(920-1992)는 그의 저서 <정치사회학>에서 대의정부와 정당, 선거가 중요한 틀을 제공해 주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확립하기에는 그 자체로 부적합하다고 한다. 국정농단의 주범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시민의 힘에 의하지 않고는 한국정치는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를 제공하는 말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자유한국당은 소모적 정쟁을 유발하기 위한 냉전적 색깔론과 갈등 유발적 발언들을 쏟아 낼 가능성이 높다. 지난 주 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전방 GP 방문에서의 '남북군사합의를 깨야 한다'는 주장, 강효상 의원의 한미정상 통화 내용 공개 등 국익에 해가 되고, 상식의 선을 넘는 유형의 행태들이 반복될수록 정치는 시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유권자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양대 거대정당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금도를 넘는 비상식의 행위가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한국정치의 작동체계를 바꾸려면 깨어있는 시민이 주체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정치는 왜 존재하며 정당은 올바른 정치의 동력으로 기능하는가. 1월과 2월을 동면한 국회는 3월 임시국회에서 비쟁점법안 등을 통과시키고 4월 국회에서는 패스트트랙으로 물리적 충돌까지 겪었다. 한국당의 장외투쟁은 집권세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격과 비난으로 일관하며 정치적 증오를 극대화했다. 한국당 대표의 '민생투쟁 대장정'은 집권여당과 청와대 비난으로 정쟁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적대'와 '혐오'를 넘는 '저주'와 '독설'의 정치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수구세력 결집을 통한 총선 승리다.

정치를 정상화시킬 능력과 의지를 한국정치는 상실했다. 주된 원인 제공자는 분명 한국당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무능한 정치영역 자체에 혐오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양비론의 함정은 어쩌면 한국당이 바라는 바일 수 있다.

시민은 1970년대의 유신과 1980년대의 군사정권의 암흑을 뚫고 비록 절차적 측면에 국한되었지만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또한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집단을 탄핵하여 정권을 교체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를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다. 선거가 정치를 통해 입신을 달성하려는 요식행위로 전락한 지금이 사회운동이 부흥하고 확장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노무현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한국사회의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선거제도와 정치제도의 개혁 등 제도화를 통한 정치의 정상화를 추구하는 데 상당한 장애가 발생하는 현실에서 다시 시민정신의 발현과 사회운동을 통한 변혁을 모색해야 할 때다. 개인과 집단은 정부정책에 있어 모든 수준에서 그들의 이익을 주장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알고 있다. 이러한 시민집단과 개인들이 대안을 찾는 방법들을 공공 토론의 영역으로 가져와야 한다. 다시 시민이 깨어나야 한다.

叢書 : line 35.


총서 :
line 35.



*** 叢書 :  line  35.




* 인간은 유사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무지에서 지에로 극복 하기 위하여
진리를 찾아 나왔다.



* Human beings from the beginning of history until today
have ceaselessly searched for the truth
with which to overcome both types of ignorance and
to attain knowledge.


* 위 영문의
Syntax Diagram을
아래에 게시 한다.
 
 

2019년 6월 1일 토요일

​⁠風前 燈火 國運 現實 忘却 하고, 나라 亡하라고 亡靈의 幽靈굿 하는 亡國黨과 눈 먼 들쥐들을 慨嘆 한다.


​
風前 燈火
國運 現實
 
忘却 하고,

나라 亡하라고
亡靈의
幽靈굿 하는

亡國黨과

 눈 먼 들쥐들을
 
慨嘆 한다.
 
 






미·중 패권 전쟁 속 문재인과 김정은, 그들의 선택은?

[이충렬 칼럼] 미중대결시대의 한반도생존책략



2019.06.02 15:23:52





미·중 패권 전쟁 속 문재인과 김정은, 그들의 선택은?


























1. 최근 며칠 동안 미중 대결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유튜브 방송을 집중 시청하였습니다. 패권을 지속하려는 미국과 견제를 뚫고 G1으로 부상하려는 중국의 정면 충돌이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시작되었답니다.



1-2. 소감을 말씀드리면, 일감(一感)은 너무 흥미진진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공룡이 21세기의 패권을 둘러싸고 한판 승부를 시작했는데, 그 스케일과 전선의 다양함, 그리고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치밀한 수 읽기 등등, 어느 소설보다도 더 박진감을 줍니다.



2. 한반도가 남극이나 북극에 있거나, 아니면 지구 밖에 위치해 있다면, 제3자로서 즐기기만 하면 되지만, 우린 미국과 중국에 꼭 끼어 있지요. 이 전쟁의 여파는 곧 우리에게 생사흥망을 가르는 선택의 강요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생각하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칩니다. 화웨이 제재 여파로 삼성이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라는 단순 반응은 전체 그림 속에 별 의미도 없습니다.



2-1. 이 시기에 국내 정치는 '막말 정치'로 점령당한 상태입니다. 내년 총선에 초점을 맞춘 막말 정치는 이조 후기의 '예송논쟁'을 상기시킵니다.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적 무력을 갖춘 서양 열강이 새로운 시장과 자원을 찾아 동양으로 함대를 이동시키는 동안, 조선은 세계 동향에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농민을 더 착취해 자신의 재물을 늘리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약간 과장했습니다). 아! 쓰다 보니 이조 후기의 양반이 화를 낼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예송을 논했지, 막말을 주제로 삼진 않았다'고 말입니다.



2-2. 어느 진영에 속하는 지에 따라 이 전쟁을 보는 관점이 확 다른 것 같습니다. 보수진영은 환호성 일색입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 노선을 견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에 가득 차 있지만, 시진핑 중국주석과 정면으로 '맞짱' 뜨는 그에 대해서 박수 갈채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생각 아래에는 '거 봐라. 역시 세계의 패권은 미국이 쥐고 있다. 반미? 꿈 깨!'라는 소리를 진보진영에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2-3. 대다수 진보진영은 세계관의 패닉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미중 대결을 전체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어떤 진보 논객도 쓰질 않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피해 (collateral damage)를 입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는 우려를 표명하는 정도입니다. 지난 번 사드 사태를 통해 중국의 보복이 얼마나 우리의 아픈 데만 정밀타격(surgical strike)하는 지를 체험한 바 있습니다. 관광 취소, 롯데에 대한 선별 타격, 현대자동차의 붕괴, 등등. 그럼에도 자신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삼성의 반도체에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2-4. 이번 전쟁을 엿보면서, 새삼 대한민국은 안보는 미국과 동일체이고, 경제적 생존은 중국과 동일체임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빠진 한국의 안보는 중국과 일본의 놀이감 밖에 안됩니다. 동시에 중국과 미국에서 엄청난 흑자를 올리고 있으며, 미국의 첨단 기술을 중국에 이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1991년인가요, 중국은 남한을 경제발전의 과외 교사로 삼고자, 항미원조 전쟁의 혈맹인 북한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한국과 수교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그런 비정한 면을 보일지도 모릅니다.



3. 본론을 이야기 합시다. 우리의 관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도대체 이 전쟁의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미국일까 아니면 중국일까 그도 아니면, 봉합일까? 두 번째, 우린(한반도의 남북을 포함하여) 헤쳐나갈 길이 있나? 미국과 중국이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압력 하에서 지혜롭게 위기를 벗어나면서 오히려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가 있을까?



3-1. 처음에는 무역전쟁으로 시작했다가 화웨이를 계기로 기술 전쟁으로, 더 나아가 환율 전쟁과 금융 전쟁으로까지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는 것같습니다. 어떤 분석가는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금년 내 군사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중국의 대국굴기를 확실히 아작내겠다는 것이랍니다.



3-2. 저는 이 전쟁을 정확히 예측할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주관적 추론이 더 많을 수밖에 없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이 전쟁의 향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패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는 파탄을 고했고, 미국은 이제 미끄럼 타고 내리막길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것이 대다수 진보진영의 분석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미국 패권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고 본 것입니다.



3-3. 상황의 반전을 가져온 것은 '기술혁명'이었습니다. 2012년 유가가 배럴당 130불을 오락가락할 시절에 미국에 '세일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당시까지 채산성이 없었던 '셰일가스와 오일'을 약 60불 정도의 채굴원가로 파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매장량이 어마어마해서 향후 수백 년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는 여전하지만, '석유고갈론'은 이 시점을 계기로 완전히 꼬리를 감추게 됩니다.



3-4. 2018년 연말에 이르러 '셰일가스'의 채굴 원가는 40불 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참고로 세계 최대의 석유매장량을 가진 베네주엘라의 채굴 원가는 70-80불이라고 합니다.) 이제 미국은 세계 최대의 에너지 수입 국가에서 에너지 자립은 물론이고 본격적인 에너지 수출 국가로 변모합니다. 이로 인해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견지해온 세계 전략은 완전히 패러다임이 바뀝니다. 중동 석유에 발목잡힌 에너지 안보전략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3-5. 작년 미국은 3.2%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율을 기록했습니다. 고용은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라고 합니다. 세계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개인의 독특함에 주목한 나머지 미국의 이 구조적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봅니다. 중국이 '대국굴기'와 '중국몽'이라는 희망사항을 읖조릴 때, 미국은 이미 이전과 다른 '패권굴기'를 이루었습니다.



3-6. 중국은 아직 공산당 1당독재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입니다. 소프트파워 강대국이 되기에는 근원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에너지 독립을 이룬 미국이, 자신이 가진 세계 최고의 군사력, 기술력, 달러 패권을 왜 순순히 중국에 양도하겠습니까? 중국이 반전을 이루기에는 전체적인 국력에서도 밀리지만, 지난 수 년간 많은 패착을 두었다고 보입니다. 남한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도 '소탐대실'의 후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 그럼, 한반도는? 한마디로 갑갑합니다. 국제 정치는 진실보다는 지혜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입니다. 우선 남한의 처지가 어렵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중국이 엄청난 무역을 한다지만, GDP 대비 무역량은 30%이하라고 들었습니다. 일본조차도 38%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100%가 넘습니다.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미국과 중국이 경제 보복을 취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운명은? 뻔합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4-1. 우선순위를 말한다면, 첫째 대한민국은 미국의 동맹이라는 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의 결정적 고비에서 중요한 것은 동맹의 확보입니다. 더욱이 상대가 세계의 패권국이라면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19세기말 고종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청에 이어 러시아의 도움으로 왕조를 유지하려는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러시아의 숙적이었던 영국은 당연히 일본 편에 섰고, 일본은 당시의 패권블록 영국과 미국을 동맹으로 확보했던 것입니다. 더 이상의 결과는 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4-2. 둘째로 중국의 '시범 빳다'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화웨이 오너의 딸이자 CFO를 체포한 것은 미국이지만, 중국은 미국보다는 체포를 도운 캐나다를 패고 있습니다. 사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배치했는데, 힘없는 한국만 공격했습니다. 지금 중국은 '화웨이의 백도어 프로그램'이 드러나자 세계적으로 고립되고 있습니다. 지나친 영유권 분쟁으로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집권하자마자 반미, 반트럼프를 외치고 친중을 표명했던 필리핀의 두테르테 정권도 중국이 자국의 영유권을 침범하자 (낯간지러울 새도 없이) 친미반중으로 외교 전략을 한순간 변경했습니다. 우리의 우군을 늘리고 맨 앞에서 '시범 빳다'를 안 맞아야 합니다. 병자호란을 앞두고 최명길 노선과 김상헌 노선이 생각납니다. 살아남는 나라가 강한 나라입니다.



5.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을 생각해 봅시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에 미국의 주적을 나열할 때, 중국, 시리아, 이란을 언급하고 북한은 빼고 있습니다. 처음 북미협상이 시작될 때, 중국을 북미협상을 도와주는 변수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닙니다. 미국의 주 타깃은 중국입니다. 정말로 다행히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는 대화노선을 채택하고, 북한의 외교적 비핵화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고 한답니다. 심지어 북한을 친미 블럭에 넣어 중국방어망을 강화하려는 구상도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5-1. 북한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가 70억불 가까이 올랐다가 최근 체제의 여파로 20억불 미만으로 줄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여전히 중국은 북한의 목줄을 쥐고 있습니다. 2000년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인 양빈을 신의주 장관으로 임명하고 특구를 개발하려하자 중국은 바로 양빈을 잡아다 감옥에 쳐 넣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유서에 '중국을 믿지 말라'는 말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5-2. '중국의 종속에서 탈피한 북한'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안될까요?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킴으로서 미국과 적대국이 되었습니다. 소련과 중국이라는 뒷배를 배경으로 냉전시대를 버텼던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해체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국제 미아가 되었습니다. 북한이 미국과 정상 관계를 이룬다면, 미국의 자본과 기술과 심지어 안전 보장을 받는다면?



6.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난다면, 이제 탐색전을 그만할 때가 되었습니다. 본론을 말할 때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역발상을 통해 한반도의 안전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논할 때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는 '미국·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까'입니다. 앞으로 수십 년간 미국의 패권 경영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중국의 단독후견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이라는 새로운 파트너와도 동거를 해볼 것인가? 우리 민족의 명운을 가름할 중대 분수령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그들의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