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7일 화요일

상처 받은 심령의 외로운 방황.

K 교수님의 기다란 하소연의 글에서
< 외롭게 방황 하는 상처 받은 심령 >의
안타까운 영상이 남습니다.

어찌 보면 나의 경우는
누구와도 가까이 하지 않아서
인간적인 상처가 없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행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거지 각설이 타령의 하나이지요 ).

중심 인물과의 개인적인 상처의 기억은
참 된 생령 개척 완성의 노정에
확실 하게 방해물인 것은 부정 할 수가 없겠지요.

아무리 화염검과 가시 덤불이 가로 막는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 하고
내 생령의 가치 추구를 포기 할 수는 없습니다.

무가치 한 생명 존재로 스스로를 패댕이쳐 버리는 자포자기의 존재는 결코 회피 해야 하겠지요.
내 생명 존재는 생령 완성 추구의 지상 생애 책임을 숙명적으로 짊어지고 있읍니다.
이 때에서만이 내 존재는 가치 있는 발광체로 빛 날 것입니다.

그리고 K 교수님은
그 길로 잘 달려 나왔읍니다.

아래에 몇 가지를 짚어 보겠읍니다.

1. <  -  -  -  아쉽게도 저는 개인적으로 형진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고 -  -  -   >

위에서 논 했거니와, 부연 하자면,
개인적인 상처는
내 개성체 안에 나도 모르게 포함 되어 나와 일체로 움직여
나의 정체성으로 여겼던 < 불순물 >을 정제 해 내는 용광로의 노정으로 생각이 됩니다.

다른 말로 표현 하자면,
< 옥석 선별 >의 과정이라고 생각 합니다.



2. < 또한 BY엄마가 너무 열심히 따르다 보니, 저는 더욱 형진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

가정과 남편과 자녀와 부모 보다도 더 하나님(중심 인물 - 대신자 )을 사랑 하는 자만이
천국인으로 합당 하다
고 하신,
초림 예수님과 재림 메시아의 말씀을 실천 신앙
하고 있고,
바른 길로 가고 있으므로,
격려와 위로와 협조를 더 해서 사랑 해 드려야 하는
대승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
초림 - 재림 메시아의 말씀에 부합 하는 인생이라고 생각 합니다.



3. <
자식을 몰아내고, 부모를 비난하는 종교지도자!
아무리 섭리가 중요하고 뜻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 . .  >

가. < 자식을 몰아 내는 독생녀. >

타락 한 독생녀가
선의 하늘의 명을 받들어 재림 메시아가  세우신 대신자인 자식을 몰아 내는 것은
타락 독생녀 배후에 역사  하는 마귀의 필연적인 반발 작동으로 이해 합니다.

나. < 부모를 비난하는 종교지도자! >

사랑 하고 존경 하며 아끼는 부모가  사망권의 불길로 걸어 간다는 것을
자식이 선의 하늘의 심정에 느껴 안다고 할 때에,
불효의 구정물을 뒤집어 쓰고,  몸에 화염이 옮겨 붙어 ( 인륜의 가치 기준에 배치 )
자식의 존재조차도 위험에 노출 되는 환경에 처 할지라도( 인륜 가치의 채찍)

그 자식은 스스로의 존재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세상의 비난 )
사랑 하는 부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뛰어 들어 가야 하는 것이
< 천륜의 효도 >입니다.

세상의 비난이 두려워서
부모가 사망권의 불 속으로 걸어 들어 가고 있는 때에
외면 하는 자녀는
진정 한 < 천륜의 효>의 길을 외면 하는 것입니다.

형진님의 비난은
진정으로 모친의 생명을 염려  하는 천륜의 효의 길을 택 하여
세상 인륜의 비난을 감수 하는 노정입니다.

모친이 참 된 생령의 길로 복귀 하시기를
간원 하는 지극 한 천륜의 사랑의 심정이 숨어 있읍니다.


4. < 사회를 구원하고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종교가,
세상의 염려 대상이 되고, 세상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이미 종교의 사명은 상실했다고 봅니다. >

가. 그 명제는 옳은 정언입니다.

나. 그러나 그 말을 하는 본인이
그 종교의 구성원의 일인의 지위에 위치 한다고 할 때에,
사명 상실로 판단 된 자기 소속 종교를 외면 한다는 것은,

다. 참 된 지성인의 자유 의지 실천 행위를 포기 하는
무책임 하고 무성의 한 인간성의 소유자임을
스스로 폭로 하는 언사입니다.

라. 그 언행은
선의 하나님이 슬퍼 하시고,
메시아가 서러워 하시는 언행입니다.


5. <  - - - 물론 일요일이 되면 허전하고 교회에 가고 싶고, - - -  >

참의 길을 추구 하여 한 생을 꿋꿋 하게 올곧은 노정을 개척 하던 존재의
상처 받고 방황 하는 고독 한 내면의 서러움은 선의 하나님의 슬픔의 심정 체휼 발로이며,

타락과 관계 없이 창조 본연의 가치를 구현 하는
< 제 2의 하나님 >이며 < 제 1의 성서 >인 대 자연의 품 속에서
심령의 상처에 위로를 받는 길만이
당장은 필요 한 노정으로 생각이 됩니다.

메시아도,
도심에서 식구 무리에 둘러 싸여 환호, 박수와 주시 속에서 벗어 나시어,  때때로
청평 호반의 숲 속을 홀로 거니시면서
지치신 심령을 회복 하시고 위로 받으셨다고 합니다.


6. < 아직 제 자신 정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더 이상 안식년처럼 허송세월 보낼 수는 없습니다. >


진정 한 참을 찾는 내면의 아픔을  < 절대 고독 >의 위치에서 감내 하면서
홀로 몸부림 할 때에,
어느 사이엔가 선의 하늘이 함께 하시어 동행 하고 계심
본성의 양심의 심령에 느끼게 되고,

선의 하늘의 참사랑의 품에 안기어 빛 나고 있는 자신의 생령
발견 하시리라고 확신 합니다.

어서 속히 그리 빛 나는
새 해가 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아주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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