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자신의 트라우마부터 치유하라!
[미디어오늘 1077호 사설]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2016년 11월 30일 수요일
‘박근혜의 실험’은 끝났다. 그냥 끝난 게 아니고 ‘대실패(The Grand Failure)’로 끝났다. 박근혜의 실험이 온갖 탐욕에 사로잡힌 사이비 교주 가족이 기획하고 부추긴 ‘40년 프로젝트’에 의한 것이든,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를 박근혜 자신이 생각하는 신(神)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던 목적에 의한 것이든, 지금은 별로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미디어오늘이 사설을 통해 오래 전부터 주장하고 예측해 왔듯이, ‘박근혜 파라독스’는 오롯이 완성되었다. 박근혜는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주관적, 객관적 조건에 있지 않았다. 박근혜는 스스로 밝힌 것처럼 국리민복(國利民福)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수준으로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올려놓겠다는 목적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의 민낯과 온갖 추문을 5천만 국민과 세계에 드러낸 것도 모자라, 아버지 박정희를 무덤에서 꺼내 역사적으로 재평가하게 만드는 사실상의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자초한 것이다. 11월 12일 이후 주말마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수백만의 촛불들의 요구는 ‘박정희 부녀 시대의 청산과 새로운 공화국 건설’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의 퇴진은 기정사실이다. 형식과 시간의 문제만 남았다. 자진사퇴, 특검 수사와 탄핵, 망명, 감옥, 그리고 자결 외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자결이란 용어를 꺼내는 것이 예의도 아니고 결코 바라지도 않지만, 전직 대통령 중 한 분이 자결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뿐이다. 오해 않았으면 좋겠다.
박근혜는 특검 수사는 받지 않으려 할 것이다. 왜? 공포감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자신의 말과 사고, 의식과 지식 체계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특검 수사이기 때문이다. 변호인이 옆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고, 도울 수 없는 일이 있다. 박근혜 자신이 홀로 자신의 65년 삶 전체와 아버지가 남긴 부정적 유산과 트라우마(trauma)까지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뼛속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와 밤낮없이 씨름하며 지금까지 고통스럽게 버텨왔을 것이다. 이번에 청와대에서 구입한 것으로 드러난, ‘이해할 수 없는 의약품목들’은 박근혜의 트라우마가 유발하는 ‘신체감각, 행동, 감정, 충동, 질병이나 질환’ 등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친박 좌장’으로 불리는 서청원 전 최고위원을 비롯한 ‘진박 8인’이 모여 박근혜의 ‘명예로운 퇴진’을 청와대에 건의했다고 한다. 그 건의가 제대로 박근혜에게 전달됐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박근혜가 청와대 비서진을 통해 그 같은 보고나 건의를 들었다면 또 한 번 배신에 치를 떨었을 지 모른다. ‘오늘의 박근혜’를 만든 일등 공신들이라 할 수 있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전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은 일찌감치 박근혜 등에 칼을 꽂았다. 우리나라 직업 정치인들에게 배신은 배신이 아니다. 그들의 최우선 과제는 자신의 생존이다. 그걸 몰랐다면, 몰랐던 사람이 문제다.
이제 박근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의 죽음이 박근혜 자신에게 가져다 준 트라우마부터 치유하길 진심으로 권유한다. 많은 신경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트라우마의 원인과 증상들은 피하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트라우마의 원인과 정면으로 그리고 진솔하게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는 사퇴를 전후해 아버지 박정희가 국가와 국민들에게 남긴 모든 부정적 유산과 특히 종신독재, 폭압정치의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트라우마 등에 대해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한다.
트라우마는 유전된다고 한다. 트라우마는 세대를 거쳐 경험하지 않은 후손들에게도 유전된다는 것이다. 신경정신과 의사로 ‘유전된 트라우마’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치유해 온 마크 월린(Mark Wolynn)이 올 봄에 펴낸 역저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It Didn’t Start With You)”를 읽어보길 권한다.
진심으로 다시 한 번 박근혜에게 권고한다. 박근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국민 앞에 호소하는 것이 좋다. 가장 먼저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을 찾아가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며칠 밤낮을 유족들과 부둥켜안고 울어야 한다. 박근혜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의 아픔과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아픔을 냉혹하게 외면했다. 그러고 나서 박근혜는 촛불 집회를 통해 드러난 국민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테니 아버지와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빌어야 한다. 그것이 박근혜가 나라를 살리고, 자신과 아버지 박정희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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