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칼럼] 우주산업과 우주철학
우주산업이 언론에 부쩍 부각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7월부터 ‘우주산업클러스터’를 지정해 집약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첫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6월21일 위성의 궤도 안착에 성공한 뒤부터 이어진 흐름이다. 발사 다음날 조선일보는 1면 머리 “우리 우주를 열었다”에 이어 “마침내 우주로 첫발 내디딘 대한민국” 제하의 사설에서 “선진국들은 우주를 미래 산업으로 보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며 “앞으로 패권은 우주를 선점하는 나라가 거머쥐게 될 것”이라고 부르댔다.
한겨레도 “누리호 발사 성공, ‘뉴 스페이스’ 대장정 첫걸음 되길” 제목의 사설에서 “이제 민간까지 앞 다퉈 우주 개발에 나서는 ‘뉴 스페이스’ 시대에 당당히 동행할 수 있기”를 촉구했다. 한겨레까지 나서서 민간주도의 우주 개발을 주창한 것은 뜻밖이다. 그래서일까. 정부는 지금까지 축적된 연구를 ‘민간’에 이전하고 심지어 기업의 수익성 보장을 위해 우주개발 사업에 기업들이 이윤을 계상할 수 있도록 계약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 혈세를 쏟아 이룬 공적 성과들로 자본의 몸집만 불릴 수 있다는 우려는 어떤 신문, 어떤 방송에서도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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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신자유주의’ 작명이 그랬듯이 우주개발의 ‘정부 주도는 올드 스페이스이고 민간 주도는 뉴 스페이스’라고 언구럭 부린다. 하지만 우주까지 자본 주도—언론이 그것을 ‘민간 주도’로 미화할 일이 아니다—로 개발할 때 정말 문제는 없을까. 대표적 문제점으로 ‘우주쓰레기’를 짚어보자. 총알보다 10배 속도로 지구를 돌고 있는 1mm에서 1cm 사이의 우주쓰레기는 1억 개를 훌쩍 넘는다. 작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지름 1cm보다 큰 쓰레기가 90만 개, 10㎝ 이상도 3만6천 개가 넘는다. 10년 뒤에는 3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위성의 연쇄 충돌로 파편이 더 자잘하게 쪼개져 궤도가 아예 쓰레기로 덮일 수 있다는 경고가 40년 전에 나왔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지구 환경보호와 앞으로 우주여행을 위해서도 관련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 파편이 우리에게 떨어질 가능성이 조금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 더 그렇다.
우주와 지구 환경을 보호하려면 모든 관련국에 적용되는 새로운 국제 협약이 절박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와 달리 ‘이윤 추구’가 존재 이유라고 서슴없이 자부하는 자본이 앞을 다퉈 우주를 욕망할 때 어떻게 될까. 우주 개발이나 우주 기술, 더 나아가 자본 주도의 우주산업을 논의하는 언론은 물론 현대인 모두에게 우주철학의 성찰이 절실한 이유다.
우주철학은 철학의 새로운 사조를 예고한다. 스탠퍼드철학백과사전에 ‘우주철학’ 항목이 들어간 것은 2017년이다. 유럽과 미국 철학 수입에 급급해온 한국인이 얼마든지 독창적 사유를 전개할 수 있는 마당이다. 우주철학은 20세기 이후 우주과학의 눈부신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우주산업과 같다. 현대 과학이 우주의 진실을 곰비임비 밝혀낸 사실에 주목한 우주철학은 “지금까지의 철학은 우주를 망각했다”고 단언한다.
우주산업이 그렇듯이 우주철학도 인류의 미래 문명을 우주에서 찾는다. 하지만 내용은 다르다. 우주철학은 우주개발을 정부주도 아니면 자본주도로 이분화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 자본주의 아니면 공산주의 이분법이 적실하지 않은 이치와 같다. 우주산업이 기술과 자본의 논리를 중시한다면 우주철학은 현대 우주과학의 성과와 인문·사회적 성찰을 융합한다. 우주철학은 우주적 관점―더 깊게는 우주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사유하고 그 성찰적 인식을 실천하는 삶의 철학이다. 우주철학은 인간과 우주를 이원화하지 않는다. 우주의 암흑물질과 인간의 인식기관에 담긴 ‘어둠’을 직시한다(자세한 논의는 『우주철학서설』을 참고할 수 있다).
인류가 서양의 근대 문명에서 벗어나 우주적 문명을 새롭게 구상하겠다면, 한국인이 그 문명 창조를 선구하려면, 지금부터 우주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절실하다. 최소한 우주산업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른바 ‘뉴 스페이스’에 언론의 일방적 찬사는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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