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칼럼] ‘윤석열 머슴’ 어디 갔나?
머슴. 더러 오해하지만 노비나 하인이 아니다. 부농이나 지주에 고용되어 일을 해 주고 품삯을 받는 사내를 이른다. 1980년대까지 전체 농업 노동 가운데 0.6%를 차지했다. 노동인들의 권리 의식이 보편화하면서 시나브로 사라졌다.
참 흥미롭게도 머슴은 정가에서 부활했다. 민주화 이후 선거에 나서며 머슴을 자처하는 후보들이 나타났다. 가장 강렬하게 머슴을 자임한 후보가 윤석열이다. 3월7일 안산에서 “모든 선출직·임명직 공직자가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머슴이 되는 게 민주주의”라며 심판해달라고 호소했다.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주인인 국민에게 이로울까’ 이 생각을 하고 살아야”한다며 문재인을 겨냥해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는 머슴이 맞나”라고 훌닦았다. 국힘당은 선거일 아침에 “착실한 머슴 뽑아 국민이 주인되는 날”이라며 투표를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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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다. 나는 앞으로 그를 머슴으로 종종 쓰고자한다. 오해 없기 바란다. 그의 뜻을 존중하고 자칫 잃기 쉬운 초심을 상기해주고 싶어서다. 노동권 의식도 없기에 안성맞춤이다.
국민이 그를 머슴으로 고용하자 언행이 싹 달라졌다. 주인을 섬기는 머슴의 자세가 도통 보이지 않는다. 국민 159명이 거리에서 긴급 구조를 호소하며 압사했는데도 담당 장관조차 문책하지 않는다. 12월16일 참사 현장에서 유가족의 오열과 통곡 속에 49재가 열린 시각에 우리의 머슴은 ‘윈·윈터 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석했다. 이해 못할 일만은 아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상품 판촉행사다. 다만 법인세를 비롯해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펴고 있기에 선뜻 수긍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방짜유기 술잔을 사들이고 딱한 농담도 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이 찍은 머슴 부부는 행복을 만끽하는 표정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 단추를 누르고 행사 내내 함박웃음이다. 같은 날 서초동 아파트 주민들에게 떡을 돌리기도 했다. 그 시각에 49재가 열리는 사실을 보고 받았다면 내놓고 벌인 어깃장이다. 사실과 전혀 다른 말로 유가족의 분노를 일으킨 행안부 장관의 어깨를 토닥토닥한 어깃장의 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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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만이 아니다. 수입농산물을 연말 대통령 선물로 돌려 농민들을 격분케 했다. 노동운동엔 박근혜 못지않게 적대적이다. 그 살천스런 행태를 보며 똑같이 머슴론을 편 다른 나라 정치인이 떠올랐다. 탄자니아의 초대 대통령 니에레레다. 그는 “우리가 섬겨야 하는 주인은 민중이고 반드시 그래야한다”며 “머슴은 자신이 섬기는 주인의 권리보다 우월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머슴은 더 많은 의무를 지니고 있지만 더 많은 특권과 권리를 갖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연설문집 「인간과 개발」 참고). 니에레레는 자신이 열정적으로 추구한 정책이 한계를 드러내자 미련 없이 물러났다. ‘나는 물러난다’는 ‘응아투카’는 ‘공직이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물러나다’를 뜻하는 동사이자 상징어가 되었다. 바로 그래서다. 사심 없이 물러난 니에레레는 그 뒤 내내 민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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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견줄 대상은 아니로되 보라. 국민의 머슴을 격하게 자처한 윤석열은 어깃장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깨려는 세력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반복해 선동함으로써 대중을 속아 넘어가게 하거나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폭력을 동원해 겁을 주려 한다”며 “이런 세력과는 절대 타협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머슴의 언어로 너무 거칠지 않은가. 대체 지금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깨려는 세력’이 누구인가. 머슴이 어깃장 놓으며 주인의 사상까지 의심하는 꼴 아닌가. 이참에 냉철히 짚자. 누가 “끊임없이 거짓말을 반복해 선동함으로써 대중을 속아 넘어가게”하는가. 누가 겁을 주고 있는가. 그의 말처럼 그런 세력과 “절대 타협해선 안 된다”면 주권자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옳은가. 하여, 머슴 윤석열에게 권한다. 지금 바로 거울을 보라. 자신의 변한 얼굴을 마주하며 조용히 자문해보라. 국민을 섬기는 머슴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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