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7일 수요일

光州 民衆 抗爭의 民主史的 價値 再 規定.

80 年   5 月

 光州 民衆 抗爭의

   民主史的 價値 


     再 規定.








한국당이 光州를 否定하는 진짜 理由. 

[기고] 한국당이 두려워하는 것은...

2019.02.27 09:53:09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한국당의 부정과 모욕이 계속되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당선이 거의 확실시 되는 황교안과 
당내 유력인사인 김무성, 홍준표 등이 

김진태 등 '망언 3인방'과 똑같이 

5·18유공자 명단 공개를 주장했다. 

(관련기사 : 한국당 ‘망언 3인방’ 이어 김무성·홍준표도 “5·18 유공자 명단 공개돼야”) 또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능욕한 한국당 등을 

강력하게 비판한 문재인 대통령을 
"전형적인 '국민 갈라치기' 아니겠나. 정말 나쁜 대통령을 넘어서 못난 대통령"이라고 맹비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관련기사 : 문 대통령 5.18 대응 두고 한국당 "갈라치기... 못난 대통령")

이쯤되면 김진태 등 망언 3인방과 태극기 파쇼가 問題가 아니라 
한국당 自體가 問題다. 


도대체 한국당은 저토록 줄기차게 
80년 5월의 光州를 
否定하고 凌辱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당光州를 
否定하고 歪曲하고 侮辱하는 
理由는 



80년 5월 光州의 열흘에 

大韓 民國이 指向해야 할 
高貴한 價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大韓民國의 唯一한 主權者가 
市民이라는 
宣言, 

國家 暴力에도 屈하지 않는 
勇氣와 正義感, 

주먹밥을 나누고 
掠奪이 한 件도 없었으며 

獻血하기 위해 
줄을 선 데서 나타나는 
것처럼 

大同과 連帶와 協力의  共同體, 

道廳에서의 最後가 
보여주는 
것처럼 

歷史와 大義에 대한 
獻身과 犧牲 같은 價値들이 

그것이다.




한국당은 


80년 5월 광주의   
열흘이   성취한   
가치들이 


대한 민국 전체로 확산  되는 걸 
진정 두려워하며 

이를 
한사코 막으려 한다. 




한국당이 
꿈 꾸는 
대한 민국은 

市民이 
主權者가 아니라 
臣民인 나라, 

비겁과 不義가 蔓延한 나라, 

서로가 서로에게 이리인 나라, 

오직  自身家族만 아는 나라다. 



그런 한국당에게 
80년 5월 光州의 열흘의 全國化는 

惡夢 字體다.



그런 배경과 맥락에서 보면 

김진태 등의 한국당 의원들이 

북한군 광주침투설을 주장하는 지만원에게 

국회를 열어준게 

이해가 된다. 



지만원 등은 

북한군 광주 침투설을 
줄기차게 
유포하는데, 

이는 분단과 전쟁을 겪으며 시민들 사이에 내면화된 
'북한=악마' 프레임을 
소환하는 

행위이다. 


즉 지만원 등에게 

80년 5월 광주의 열흘 간 
북한군 특수부대(일명 '광수')가 침투했는지 
사실여부는 전혀 
중요치 않다. 


지만원 등에겐 

북한군 특수부대는 
광주에 침투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만원 등은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의 
기록사진들 속에서 
닮은 얼굴 찾기놀이를 하며, 

그걸 
북한군 특수부대 침투의 증거라 
는 것이다. 

일명 '광수ㅇㅇ호'로 특정 된 
광주시민이 

직접 사진 속의 '그'가 '나'라고 
아무리 항변 해도 

지만원 무리는 
주장을 바꾸지 않는다. 


이들에겐 

사실이 전혀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지만원 무리는 

邪惡하기 그지 없는 政治的 目的을 위해

 '主張'으로 '事實'을 執拗하게 

彈劾 中이다. 


그런 지만원 무리와 한국당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




우리 시대의 主體的 知識人 김상봉 선생은

國家暴力에 對抗하는 市民들의 抗爭이 

正當性을 獲得할 수 있는 基準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도저희 堪耐할 수 없을 程度의 
國家 暴力이 
있을 것, 

둘째 
새로운 社會에 대한 
비전과 價値를 
提示할 것, 

셋째 
國家 暴力에  對抗하는 
抗爭이 行事하는 暴力의 
規律性과 節制成 存在 有無가 

그것이다. 


김상봉 선생에 따르면 
이런 基準에 完璧히 符合하는  
市民抗爭의 例가 

80년 5월 
光州 民衆 抗爭
이다. 


한국당과 지만원 따위가 
아무리 光州를 
陰害하否定하고 侮辱해도 



80년 5월의  光州는 

흠집 하나 나지 않으며 


점점 더 

힘이 

세질 뿐

이다.








한국당 ‘5·18 망언’에 윤평중 교수 “시민양식 모독”

윤 교수 “5·18 음해, 국헌문란 행위”… 6년 전 조선일보 본인 칼럼서 “북한군 침투설, 물증 없는 유언비어”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9년 02월 11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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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6772&sc_code=&page=&total=#csidx0f0dac147de83ee8560d2d9585b9199 





뉴스
2019년 02월 19일 15시 36분 KST

지만원은 왜 5.18 날조 해놓고 무죄를 받았을까?

"나는 단 한번도 지지 않았다" - 지만원

지난 2008년, 극우 인사 지만원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5.18과 관련한 글을 하나 올렸다.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지씨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지씨의 5.18 왜곡 발언이 법정에 선 것은 2008년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한 일간지에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광고를 싣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됐고 법원은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지난 2013년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일성과 짜고 북한 특수군을 광주로 보냈다’ 는 등의 허위 주장을 펼친 혐의(사자 명예훼손)로 2013년에도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단을 받았다.
법원은 지씨의 혐의를 대체로 유죄로 보았다. 명예훼손으로는 무거운 편인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렇다면 지씨는 왜 유독 지난 2012년 재판에서만 무죄를 선고받았을까?
바로 명예훼손죄의 법리 때문이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특정돼야 한다. 즉 명예훼손으로 피해를 입는 당사자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지씨의 허위사실이 담긴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물에 피해자의 성명 등이 직접 표시되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물론 특정 단체나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을 법원이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이 사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며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도 인정하지 않았다.
지만원은 이 ‘무죄판결’ 이후로 자신은 한번도 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5‧18민주화운동 명예훼손) 형사재판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02년 유죄 판결에 대해서는 ”광주 법원에서 (재판을) 하니까 졌다”고 변명한 뒤 그는 ”서울에서 (재판) 하니까 다 이겼다”고 말한다. 즉 그의 주장에만 따르면 광주 재판부가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면 서울에서의 재판은 그의 주장을 용인했냐는 점이다. 다음은 판결 일부다.
“5·18 민주화운동은 이미 그 법적·역사적 평가가 확립된 상태여서 지씨가 올린 게시물을 통해 5·18 민주유공자나 참가자들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평가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게시물이 5·18 민주유공자 등 개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
당시 재판부는 지씨의 주장에 대해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게 아니라 오히려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해석했다. 즉 지씨의 주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기 때문에 평가에 흠결을 낼 수준도 못미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법리의 한계 때문에 유죄를 판결하지 못하면서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해석에는 이견이 없다는 나름의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바로 이 판결은 5.18에 망언의 근거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 8일, 자유한국당은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이 내뱉은 말들이다. 이들은 ‘‘5·18 진상규명 공청회‘를 열고 이 자리에 지만원을 초청해 ‘북한군 개입설‘, ‘광주 폭동’, ‘5.18 유가족은 종북좌파가 만든 괴물집단’ 같은 망언을 펼쳤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인 나경원은 이 망언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가 큰 비난을 받았다.
5.18 재단 이사이자 변호사인 임태호 씨는 여기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단을 받은 뒤 지씨는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식으로 왜곡 활동을 더 확대해나가기 시작했다. 법원으로부터 일종의 ‘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생각한 것 같다” 고 설명하기도 했다. 지씨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5.18 루머를 확대 재생산시키고 있다는 의견이다.
지만원은 현재 한차례 재판을 남겨놓고 있다. 마찬가지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발언 때문이다. 이 사건은 지난 2016년에 공소장이 접수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판결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2017년 01월 20일 11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20일 11시 57분    

5·18에 북한군 군사행동이 없다는 문건을 

CIA가 공개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의 군사행동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미국 정부문건이 확인됐다. 이 문건에 따르면 그간 '5·18은 북한군 선동에 발생한 폭동'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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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재단은 20일 긴급기자간담회를 열고 CIA 전자도서관을 통해 확보한 5·18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은 5·18을 전후로 미 정부가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국가정보위원회(NIC)에서 만든 기록물로 전날 CIA가 인터넷에 공개한 자료의 일부.
당시 북한의 동향을 담고 있는 각각의 문건은 전두환 신군부 등장 이후 혼란국면에서 한반도 내 북한의 도발 위협이 낮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었다.
문건 중 '비밀(Secret)' 등급이 매겨진 1980년 5월 9일자 미 NSC 관련 자료에는 "북한은 한국의 정치불안 상황을 빌미로 어떤 군사행동도 취하는 기미가 없다"며 "하지만 1979년 10월 26일과 12월 12일의 사건에 무척 놀라고는 있다"는 동향보고가 기록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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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홈페이지 캡처.
이어 "하지만 1979년 12월 이후 지적했던 것처럼 북한은 한국 내 불안한 상황을 계기로 무력통일에 대한 생각을 고려할 수도 있다"며 "이 상태에서 만일 미국이 동남아시아나 미국 내 상황에만 치중한다면 북한은 미국이 한국 사태를 해결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해 섣부른 행동에 나설 소지도 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5·18이 끝난 직후인 같은 해 6월 2일에 작성된 미 NIC 문건에는 "현재까지 북한은 남한의 사태에 합리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김일성은 남한에 위협이 되는 어떤 행동도 전두환을 돕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알고 있다"고 나와 있다.
'일급비밀(Top Secret)'로 분류된 이 문건에는 "지난 한 달 동안 반복된 북한 입장은 남한의 사태에 결코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눈에 띄는 어떤 행동도 전두환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빌미로 제공하는 행위라는 것을 직시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NIC는 북한이 군사행동을 시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당시 미국이 보여준 공군과 해군의 파워에 겁을 먹었고, 1980년 사태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자료에 실려있다.
5월 단체는 두 문건이 '5·18은 북한군 선동에 발생한 폭동'이라는 지만원(74)씨 등의 주장에 합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미국의 정보력에 대한 신뢰와 최상층이 공유하는 회의에서 나온 정보임을 고려하면 이를 넘어서는 수준의 다른 자료가 당분간 나올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5·18 단체는 지씨와 뉴스타운 등 5·18 왜곡세력을 상대로 제기한 민·형사 소송 담당 재판부에 해당 문건을 증거자료로 제출할 방침이다.






(이 글은  < Naver blog  :  The North Star.  >  에 同時 揭載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