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4일 월요일

수치가 무엇인지 알아라 !

​눈물과 한탄으로 읽어야 마땅 한 글 앞에서 말라버린 눈물샘을 탄식 한다. You haven’t highlighted anything yet When you select text while you’re reading, it'll appear here. [손석춘 칼럼] 언론개혁 무능정당, 언론개악 유능정당 By 미디어오늘 mediatoday.co.kr 3 min View Original 다시 오월이 간다. 해마다 오월이 흐르면 자괴감에 젖어든다. 1980년 오월, 언론을 이대로 두고선 이 땅의 민주주의도 민족통일도 어둡다고 확신했다. 5월27일 새벽까지 민주주의를 사수하던 민중들이 전두환 일당에게 끝내 학살당할 때,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언론’이 아니었다. 과거를 새삼 톺아보는 까닭이 있다. 전두환이 감옥에 가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촛불혁명까지 거친 지금은 어떤가. 그 물음에 ‘칼럼’으로 답하는 “조선일보의 전설”이 김대중이다. 1980년 5월 계엄군의 만행으로부터 해방된 광주를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대는 무정부 상태’라고 거침없이 쓴 그는 2021년 5월18일 “대통령에 대들어야 기자다” 제목으로 그 신문에 칼럼을 썼다. 물론, 대통령 앞에 기자가 주눅 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말을 후배들에게 할 사람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미국 기자들이 닉슨에게 질문한 사례를 모범사례로 든 그에게 단적으로 묻는다. 바로 그 시기에 그는 대통령 박정희에게 어떤 글을 썼는가. 정치부장으로서 전두환에게 어떤 칼럼을 썼는가. ▲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과거에 연연하지 말자는 윤똑똑이들을 위해 거듭 쓴다. 김대중도 대통령에게 얼마든지 대들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조선일보의 전설로 불리는 기자라면 사실에 근거해야 옳다. 김대중은 틈날 때마다 문재인 정부를 “좌파”로 몰아친다. 심지어 “폭정”이라고도 쓴다. 과연 사실이 그러한가. 문제의 핵심은 기자 아닌 기자가 전설로 불리는 한국 언론의 생태다. 1980년 오월을 보내며 언론개혁이 절실하다고 확신했던 사람들에게 2021년 오월의 언론은 참담하다. 앞 다퉈 전두환 찬송가를 불러대던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사세가 작아지기는커녕 각각 텔레비전을 소유하며 저마다 ‘미디어그룹’을 자칭하고 있다. 조중동 신방복합체가 쏟아내는 지면과 화면의 대부분은 우리 시대의 과제인 민주주의 성숙, 민중의 생존권 보장, 민족문제의 평화적 해결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1980년 오월, 언론개혁의 대상이 된 조중동이 텔레비전까지 손에 넣은 과정을 찬찬히 짚어보아야 할 까닭이다. 기실 그 이유는 동어반복일 만큼 간명하다. 조중동이 텔레비전을 방영할 수 있도록 법이 생겨서다. 누가 입법했을까. 지금의 ‘국민의힘’ 당이다. 당명만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민정당을 오롯이 계승한 당이다. 조중동이 텔레비전을 거머 쥔 입법은 헌법재판소조차 인정했듯이 “절차상 위법”을 지녔다. 날치기로 통과했기 때문이다. ▲ 2009년 7월22일 미디어법이 직권상정 돼 당시 한나라당이 일방 처리하는 모습. 이 법의 처리로 종합편성채널의 허가가 가능하게 됐다.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날치기에 온 몸을 떨던 민주당은 자신들이 국회에서 다수당이 되면, 정권을 되찾으면 위법적 미디어법들을 개정하겠노라고 유권자들에게 약속하고 다짐하며 표를 달라했다. 하지만 보라, 지금 그 민주당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민중이 애면글면 촛불혁명을 일으켜 박근혜를 몰아내고 정권을 손에 쥐어주었음에도, 국회에서 가공할 정도의 의석을 민주당에 몰아주었음에도 보라. 문재인 정부도 민주당도 우물쭈물하거나 태평성대를 읊어댔다. 앞으로 30년을 집권하겠다는 따위의 오만이 하늘을 찔렀다. 어쩌다 마주치는 ‘민주당 586들’은 방자함이 뚝뚝 묻어난다. 물론, 처음도 아니다. 촛불도 처음이 아니었다. 노무현 탄핵으로 다수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미디어법을 누더기로 입법한 ‘전과’가 있다. “편집위원회를 둘 수 있다”로 타협했다. 눈 가리고 아웅 아닌가. 그에 견주어 저 부라퀴들은 어떠한가. 조선‧중앙‧동아일보에 텔레비전을 건네주었다. 어찌 이리 국회는 개혁에 무능하고 개악엔 유능하단 말인가. 언론개혁 입법투쟁에 나선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짠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어인 일인지 이른바 ‘진보언론’조차 그 투쟁에 무심하기에 더 그렇다. 다시, 오월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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