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칼럼] ‘내로남불 언론’의 성고문 정치
“권력이 다가온다 싶으면 양심과 이성도 마비되는 건가.” 12월20일 조선일보 사설은 제목에 실명까지 넣어 사뭇 준엄히 꾸짖었다. “이 후보 아들의 ‘여성 비하’ 표현을 ‘평범’이라 하고, 이 후보의 ‘형수 욕설’ 등에 대해선 말이 없다. 그러면서 야당 대선 후보 아내를 둘러싼 의혹 공세에는 앞장선다”는 이유에서다.
사설이 조준한 이는 “이재명 캠프의 성평등자문단 공동 단장을 맡은 권인숙 민주당 의원”이다. 사설은 권인숙이 ‘여성 비하 게시 글’을 “별일 아닌” 것으로 옹호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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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권인숙이 자진해서 그 발언을 했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그는 CBS에 출연해 ‘김건희 의혹’을 주제로 토론했다. 그러다가 진중권이 이재명 아들이 “다수의 여성혐오적인 발언들을 게시판에 남겼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 말씀을 해달라”고 질문했다. 그때 나온 말이다. 권인숙은 “그런 식의 발언은 저희가 많이 경험해서 굉장히 안타깝지만, 평범하기도 하다”라며 바로 이어 “그런 식의 행동들에 대해서 후보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소화하려고,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가의 문제는 저희가 굉장히 고민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더하여 앞으로도 계속 그런 사회 현상과 20대의 살아나가는 모습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논의해가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거두절미식 보도’의 문제를 새삼 다루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 한마디를 빌미로 권인숙이 “성고문 피해자 정치”를 벌인다고 훌닦는 언론의 행태는 도저히 지나치기 어렵다.
첫째, 조선일보는 권인숙을 ‘성고문 피해자 정치’로 비난할 자격이 없다. 조선일보는 1986년 7월 “성적모욕 없고 폭언-폭행만 했다”는 검찰의 발표문을 제목으로 부각해 기사화함으로써 기정사실화했다. 심지어 “급진세력의 투쟁전략/전술 일환”이라며 “혁명 위해 ‘성’까지 도구화한 사건”이라는 제목까지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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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독교교회협의회는 모든 언론이 왜곡했지만 조선일보가 가장 악질적이라고 판단해 ‘대표적 사례’로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를 읽은 조선일보 기자들은 부끄러웠지만 간부들은 ‘조선일보에 대한 반감이 뿌리 깊은 동아일보 해직자들 작품’이라고 언구럭 부렸다. 편집국에선 ‘보호해 줄 가치가 없다’는 말이 오갔다는 증언도 있다. 과거의 일이 아니다. 현재 주필은 물론 방상훈 사장은 생생하게 당시 보도를 기억할 터다. 나는 그 행태에 사과했다는 소식을 여태 들은 바 없다.
둘째, 내로남불의 극치다. 최근 언론이 부쩍 즐겨 쓰는 말이 내로남불이다. 상대의 위선을 꼬집는 그 해학을 가장 애용한 언론은 아무래도 조선 신방복합체일 터다. 조선일보 사설은 권인숙이 이재명 후보 아들의 ‘여성 비하’ 표현을 ‘평범’이라 하면서 “야당 대선 후보 아내를 둘러싼 의혹 공세에는 앞장선다”고 훈계했다. 하지만 어떤가. 조선 신방복합체야 말로 “야당 대선 후보 아내를 둘러싼 의혹”은 그 어떤 언론, 심지어 동아‧중앙 신방복합체와도 달리 축소해왔다. 반면에 이 후보의 아들은 신문과 방송으로 자극적 보도를 일삼아왔다. 내로남불의 ‘종결자’ 아닌가. 그들이 즐겨 쓴 ‘조로남불’의 ‘조’자를 다시 새길 때다.
명토박아둔다. 이 후보 아들의 익명 댓글을 두남둘 뜻 전혀 없다. 다만 그런 댓글을 쓰는 20대들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겠다는 권인숙의 말을 앞뒤 자르고 몰아치는 조선 신방복합체의 행태는 언론이 아니다. 자극적 정파 행위일 뿐이다. 조선일보는 1986년에도 그랬고 35년이 지난 지금도 ‘성고문 만행’으로 자기 잇속을 챙기는 정치 아닌 정치를 하고 있다.
사주 방상훈과 고위간부들에게 묻고 싶다. 공권력의 성고문과 20대 남성이 인터넷에 올린 익명 댓글을 동일 잣대에 놓는 판단이 과연 정상인가. 사설 문장 그대로 다시 묻는다. “권력이 다가온다 싶으면 양심과 이성도 마비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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