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
‘전담’이라는 말 뒤에 숨겨진 기묘한 공백
한국 국회가 만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이름만 보면 국가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중대한 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률의 실제 구조를 뜯어보면, 이 법은 “내란”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빌려 정치적 효과만 챙기고, 실질은 비워 둔 채 통과된 법이다.
이 법은 ‘전담’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정작 전담할 사건도, 전담할 권한도, 전담할 구조도 없다.
1. 부칙은 ‘빈 방을 지키는 경비원’이다.
부칙은 이렇게 말한다.
“법 시행 당시 진행 중인 내란 사건은 기존 재판부가 계속 심리한다.”
문제는 명백하다.
진행 중인 내란 사건이 없다.
그렇다면 이 부칙은 무엇을 위한 조항인가.
보호할 사건이 없는데 보호 규정을 넣었다면,
그것은 입법자가 스스로도 이 법이 실제 사건을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빈 방을 지키는 경비원을 세워 놓고,
“우리는 보안을 강화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 특검법은 기존 사건을 넘기는데, 내란전담재판부는 왜 막는가.
특검법은 기존 사건을 즉시 이관한다.
왜냐하면 “특별한 사건은 특별한 기관이 맡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정반대다.
• 기존 사건은 이관 금지
• 새로운 사건만 전담재판부 관할
이 모순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입법자가 정말로 내란 사건을 전담재판부에서 다루게 할 의지가 있었다면,
특검법과 동일한 구조를 채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일까.
정치적 부담 때문이다.
결국 이 법은
“전담재판부를 만들었다”는 정치적 메시지는 남기되,
정작 그 재판부가 실제 사건을 다루지 못하도록 설계된 법이다.
3. 검찰이 죄명을 바꾸면 전담재판부는 ‘영원히 개점휴업’
이 법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검찰이 내란죄 대신
• 직권남용
• 공무상비밀누설
• 허위공문서 작성
• 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하면 어떻게 되는가.
전담재판부는 단 한 건도 맡지 못한다.
즉, 이 제도는 검찰의 기소 재량에 따라
**작동할 수도, 영원히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는 ‘조건부 제도’**다.
국가의 헌정질서를 뒤흔드는 중대 범죄를 다루는 재판부가
검찰의 죄명 선택에 따라 존재 의미가 사라지는 구조라면,
그 제도는 처음부터 실효성을 의도적으로 제거한 설계라고 볼 수밖에 없다.
4. “엄정하게 보겠다”는 말이 왜 오히려 의심을 부르는가.
입법자는 말한다.
“내란 사건은 특별히 엄정하게 보겠다.”
그러나 법률은 이렇게 말한다.
“기존 사건은 건드리지 말라.”
“검찰이 내란죄로 기소하지 않으면 우리는 손대지 않겠다.”
이 모순은 단순한 기술적 실수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결국 국민은 이렇게 느낀다.
이런 구조에서는
“정치적 쇼 아니냐”는 의심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국민이 냉소적인 것이 아니라,
입법이 스스로 냉소를 부르는 구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5. 다른 나라들은 ‘사건의 실질’로 관할을 정한다.
독일·프랑스·미국 등 주요 민주국가들은
국가안보·반역·내란적 사건을 다룰 때
사건의 실질적 성격을 기준으로 관할을 정한다.
한국은 어떤가.
검찰이 어떤 죄명을 붙였는가가 관할을 결정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제도 차이가 아니라,
국가안보 사건을 다루는 철학의 차이다.
한국의 구조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었다”는 정치적 메시지는 남기되,
실제로는 검찰의 재량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리는 구조다.
6. 결론: 이 법은 ‘전담’이라는 이름의 빈 껍데기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내란 사건을 더 엄정하게 보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명분을 뒷받침할 구조적 장치는 거의 없다.
• 사건 없음
• 이관 금지
• 검찰 재량에 따른 관할 회피 가능
• 실질 기준 부재
이런 상태라면, 이 법은
실질적 제도라기보다 정치적 메시지에 가까운 장치로 남을 것이다.
국가의 헌정질서를 지키는 문제는
상징이 아니라 구조가 말해야 한다.
말이 아니라 제도 설계가 진심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법은 결국 “내란전담재판부”라는 이름만 남긴 채
비어 있는 그릇으로 남게 될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