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3일 수요일

손 석춘 교수 칼럼 글 공유.

 

[손석춘 칼럼] 대선후보의 수준, 대한민국의 수준

By
 
미디어오늘 
mediatoday.co.kr
3 min

대선후보의 수준은 대한민국의 수준일까. 얼마 전 미국 신문이 한국 대선에 던진 냉소가 새삼 떠올랐다.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 실소마저 떠올랐다. 한국 대선을 조롱할 겨를이 있다면 미국의 두 차례 대선에서 나타난 ‘트럼프 현상’을 심층 취재하라고 권하고 싶기도 했다. 적어도 촛불혁명을 거친 대한민국에선 트럼프처럼 민주주의 의식이 빈곤한 정치인은 나타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일 사이에 스멀스멀 의구심이 올라온다. 일부 언론이 ‘승기를 잡았다’고 보도하는 유력후보의 민주주의 의식 수준이 갈수록 심각해서다. 그는 경북 유세에서 문재인 정부가 고의로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주장했다. 말실수가 아니다. 전날에도 서울 유세에서 같은 말을 했다. 솔직히 나는 그 발언을 처음 접하고 ‘낚시 제목’으로 여겼다. 기사를 읽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사뭇 명료했다. “악의적으로 집값을 폭등시킨 것”이라고 부르댔다. 이어 “민주당 정권은 선거 공학에 전문가”라고도 했다.

‘고의적 집값 폭등’과 ‘선거공학 전문가’라는 말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궁금했다. 여러 보도를 찾아보고서야 그의 ‘심오한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집값을 폭등시켜야 집 없는 사람과 집 있는 사람을 갈라치기해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한테 누워서 표를 받는 거”란다. “집이 없는 사람은 ‘임대인의 횡포에 시달려봐라’ 해가지고 자기들이 ‘힘없고 가난하고 서민이고 노동자의 정당이다’ 그래서 누워서 선거 때마다 표 받기 위해 만든 구조”란다.

▲ 20대 대통령 선거 공식선거운동 4일차인 2월18일 오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함께 대구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동성로에서 유세를 했다. 사진=국민의힘 홈페이지
▲ 20대 대통령 선거 공식선거운동 4일차인 2월18일 오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함께 대구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동성로에서 유세를 했다. 사진=국민의힘 홈페이지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조선 신방복합체조차 감히 시도하지 않는 음모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광주 복합 쇼핑몰’ 공약을 언급하며 “대형 쇼핑몰에 있는 좋은 물건들에 관심을 갖게 되면 자기들의 정치 거점도시의 투쟁 의지와 역량이 약화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그 또한 모든 신방복합체를 뺨치는 논리다.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들, 공산주의자들과 같은 수법”이라고 몰아세운 그는 주말유세에선 다시 현 정부를 “좌파 혁명이론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비즈니스 공동체”로 몰아쳤다. 그가 케케묵은 색깔공세를 펼 때마다 참석자들이 “빨갱이”를 외친다는 보도는 섬뜩하다. 유세를 한다며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맞은 편 의자에 버젓이 구둣발을 올려놓은 모습이 살천스레 겹친다. 비판이 커지자 ‘국민이 바라지 않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사뭇 겸허한 듯 말했다. 아니다. 초점이 틀렸다. ‘국민이 바라는 행동’과 무관하게 그런 행태는 인성의 문제다. 구둣발 올린 그 자리가 일상적으로 민중들이 앉는 의자이기에 더 그렇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뜻을 구현하지 못한 과오가 크다. 부동산 폭등도 실정임에 틀림없다. 야당 후보로서 현 정권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다만 묻고 싶다. 집값 폭등이 악의적 고의였다고 정말 생각하는가. 문재인을 히틀러나 무솔리니, 공산주의자에 비유해도 좋은가. 그를 파격적으로 승진시켜 발탁한 이가 문재인이라는 말은 접겠다. 검사로만 살아온 탓이라며 그의 심하게 뒤틀린 의식구조를 이해한다면 그 또한 검사 일반에 대한 모욕일 터다.

▲ 2012년 12월20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2년 12월20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음험한 논리를 펴는 그의 자리가 너무 커졌다는 데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나는 ‘박근혜의 거울’이라는 책에서 그녀가 거울을 들여다보길 권했다.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은 물론 인간 박근혜에게도 불행이 되리라고 썼다. 근거는 간명했다. 박근혜의 ‘능력’이 조‧중‧동에 의해 부풀려졌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노상 ‘국민이 키운 후보’를 자처한다. 그에게 거울을 권한다. 그를 대선 후보로 키운 것은 국민이 아님을 누구보다 자신은 알고 있어야 한다. 문재인의 책임도 있지만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을 날마다 대서특필한 조‧중‧동 신방복합체가 그를 키웠다. 대선후보의 수준과 대한민국의 수준이 종종 심하게 어긋나는 까닭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